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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주의와 회심준비론의 관계 동전의 양면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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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주의와 회심준비론의 관계 동전의 양면 같습니다
  • 정이철
  • 승인 2021.06.30 07:25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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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준비론(Preparation)과 청교도 개혁운동의 관계를 살펴보자. 1580년대 말, 1590년대 초는 잉글랜드 청교도 개혁운동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그때까지 잉글랜드 국교회 청교도들의 주요 주장은 잉글랜드 국교회를 장로교회 체제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장로교회 운동이 그때까지 청교도 운동의 쟁점이었다.

그러나 당시 잉글랜드 국왕 엘리자베스 여왕과 국교회 감독들은 청교도들의 장로교회 개혁운동을 ‘적들의 준동’으로 여기고 핍박하였다. 칼빈의 장로교회 사상이 도입되면 국가와 교회가 분리되어 교회까지도 통제하는 국왕의 절대 권력이 무너지기 때문이었다. 각 교회의 신자들에 의해 선출되는 장로들이 등장하면 국교회의 감독들의 자리도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약 20년 동안 진행되었던 국교회를 장로교회로 전환시키자는 국교회 청교도 목회자들의 개혁운동은 국왕과 국교회 감독들의 핍박으로 1580년대 말에 종식되었다. 그때부터 잉글랜드에 국한되었던 청교도 개혁운동에서 다음과 같은 변화가 나타났다. 
 

분리파 청교도

일련의 무리가 국교회를 떠나 새로운 청교도 개혁교회를 세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먼저 네덜란드로 도주하여 그곳에서 비성경적인 요소가 많은 회중교회를 세웠다. 교인자격 획득 과정을 강화시키기 위해 비성경적인 요소가 많았던 일종의 충성맹세 제도(교회언약)를 발전시켰다. 이들이 얼마 후 먼저 대서양을 건너 지금의 미국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삶과 문명과 교회(회중교회)를 세웠다.


장로파 청교도

이들은 국교회를 떠나지 않고 그대로 남았던 국교회 성직자들이고, 숫적으로 가장 다수였다. 장로교회 설립을 말할 수 없으므로 겉으로는 포기한척 하면서 속으로 여전히 장로교회에 대한 꿈을 품고 살았다. 청교도들 가운데 이들의 숫자가 가장 다수였으므로 훗날 잉글랜드 내전과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열렸을 때 주도적인 위치에 있는 청교도들 거의 대부분이 장로교회파들이었다.  
 

국교회파 청교도

이들은 매우 소수였고, 국교회의 성직자로 남았다는 점에서 장로파들과 같았다. 그러나 이들은 국교회 신학과 제도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동시에 국교회 체제에 도전하는 행동도 하지 않았다. 또한 장로교회 설립을 바라는 마음도 버렸다. 

선두주자인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3)와 그를 존경하는 청교도 무리들은 조용히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국교회를 무너뜨리는 개혁운동을 시작했다. 국교회 신자들 각 사람이 자기의 구원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고, 자신의 구원을 위해 개인적 경건,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충성을 실천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주일성수와 경건생활, 그리고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참여하는 자세를 요청하는 설교, 출판 사역에 전념했다.
 

독립파 청교도

한때 분리파 청교도였던 헨리 제이콥스라는 국교회 성직자에 의해 독립파가 시작되었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분리주의 청교도 회중교회 목회 생활을 청산하고 런던으로 돌아가서 다시 국교회 성직자로 복귀했다. 그리고 국교회에 속하면서도 국교회 감독들의 통치를 받지 않는 청교도 회중교회 운동을 시작했다.

국교회에 속하면서도 감독들의 통치를 받지 않는 독립된 회중교회를 추구했으므로 ‘독립파’라고 불리운다. 퍼킨스의 제자들과 제이콥스의 제자들이 모두 국교회의 성직자 적을 가지고있으므로 양측의 사상이 하나가 되어갔다. 그리하여 웨스트민스터 총회 당시 신학적으로는 퍼킨스의 사상을 가졌고 교회정치에 대해서는 제이콥스의 회중교회 사상을 가졌던 소수의 ‘독립파’들이 열성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시종일관 장로교회로 존재했지 청교도 개혁운동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까지 함께 통치하는 제임스 1세가 되어 장로교회를 말살하고 국교회를 강요하자 잉글랜드의 청교도들과 협력하였다.

대표적인 신학자 로버트 롤록이 1590년대에 출판한 책에서부터 잉글랜드의 퍼킨스의 비성경적인 행위언약 사상의 영향이 나타났다. 퍼킨스의 책으로부터 영향받아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신학에도 일찌감치 칼빈의 신학에서 벗어나는 일들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1640년의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스코틀랜드 신학자들도 비성경적인 행위언약 개념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말았다.

 

이상의 그룹들 가운데 우리에게 알려진 청교도주의를 먼저 발전시킨 그룹은 국교회파 청교도, 즉 퍼킨스 일당이었다. 퍼킨스는 국교회 체제에 도전하지 않으면서 국교회 신자들의 눈과 귀를 열어 스스로 자기의 구원을 위해 분투하게 만들었다. 감독들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신앙에서 벗어나 스스로 구원을 위해 노력하게 만드는 전략을 택했다.

그것을 위한 새로운 신학적 패러다임이 필요했다. 칼빈의 하나님 주권과 은혜에 기반하는 신학으로는 그것이 어려우므로 칼빈의 신학에서 조금 벗어나서 구원을 위한 개인의 참여, 노력, 헌신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그 출발점이 바로 아담이 율법을 완전하게 실천하면 하나님이 그를 자기 백성으로 삼고 영생을 주시로 언약했다는 거짓된 '행위언약' 개념의 도입이었다. 그리고 아담이 성공하지 못한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대행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개념도 들어섰다. 능동순종으로 행위언약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수동순종으로 행위언약을 위반한 죄인이 받을 형벌을 대신 받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얻는 '은혜언약' 개념도 들어섰다.

퍼킨스의 신학을 따르는 국교회파 청교도들의 목회 신학도 더불어 성경에서 이탈되었다. 그들은 행위언약의 저주 상태에서 태어난 신자들을 은혜언약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목회의 핵심 목표로 삼았다.

먼저 신자들이 행위언약을 완성하지 못하여 저주받은 상태 속에 있음을 알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회의 중요한 사항이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보다는 율법의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를 먼저 신물 나게 먹이는 특이한 목회 방식이 형성되었다. 

청교도 목사들이 선포하는 율법의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 선포에 기죽어 자신이 하나님의 눈엣가시이고 지옥 백성인 것으로 깨달은 영적으로 각성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변화를 적시에 포착하는 것이 청교도 목회자들의 특별한 기술이었다. 그 시기를 포작하여 적당히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처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청교도 목회자들은 스스로 탁월한  ‘영혼의 의사’라고 자부했다.

율법으로 죄를 깨닫고 영적으로 각성된 사람에게 능동-수동순종으로 구원의 자격을 마련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처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회 기술이었다. 행위언약의 저주에서 벗어나 은혜언약으로 이동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청교도 목사들의 최고의 업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능동-수종순종으로 은혜언약으로 이동되게 할 그리스도의 공로에 대해 알게 된다고 그 효력을 즉시로 보는 것은 아니었다. 능동-수동순종으로 구원의 길을 여신 그리스도의 공로의 적용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것을 알지라도 믿음으로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 청교도 목회신학 회심준비론이다. 

청교도 목사들은 영적각성된 신자들에게 계속 회개하고, 기도하고, 소망하고, 예배하고, 율법준수하고, 심지어 (에드워즈는) 자선에 힘쓰면서 하나님이 능동-수동순종으로 구원의 자격을 만드신 그리스도의 공로를 적용하여 회심되게 해 주시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 시간이 영혼의 피를 말리는 과정이어 심신이 미약한 사람들을 심히 괴롭게 했다. "회심되지 못할 바에는차라지 죽는 것이 좋다"고 여기고 극단적으로 결행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것이 회심준비론 목회이다. 회심준비론 목회는 신자들에게 행위언약의 저주를 알게 한 후 은혜언약으로 이끌어가는 목회이다. 그리스도의 능동-수동순종의 공로가 적용되게 하는 것이 회심준비론 목회의 본질이다. 그래서 우리가 회심준비론을 버린다는 것은 곧 다음과 같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1>
국교회파 청교도들에 의해 처음 도입되어 잉글랜드 장로파들과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신학자들에게 전파되어 나중에 웨신서에도 삽입되고 이후 바빙크, 벌코프, 후크마 등이 개혁신학으로 가르친 그릇된 ‘행위언약-은혜언약’ 개념을 버리기로 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성경대로 ‘첫언약-새언약’, 즉 예를들어 서철원 박사가 제시하는 언약신학으로 돌아선다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의 능동-수동순종 개념도 버린다는 의미이다. 율법 선포로 신자들이 영적각성되어 행위언약의 저주를 알고 슬퍼하면, 그리스도의 능동-수동순종의 공로를 적용하여 은혜언약으로 이동되게 만드는 것이 회심준비론 목회이다. 행위언약의 저주 하에 신음하는 사람에게 능동-수동순종으로 의로움을 획득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편하게 은혜언약으로 들어갈 수있다고 가르쳤다. 

회심준비론과 그리스도의 능동-수동순종 교리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능동-수동순종개념을 버리지 않으면서 회심준비론을 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첫언약'을 파괴하고 반역한 아담의 반역죄에 대한 죗값으로 자기의 목숨을 드리신 죄없고 의로우신 그리스도의 대속에 근거하여 세워진 '새언약'으로 구원받는다는 성경적 신학으로 돌아서야 진정으로 회심준비론의 비성경적인 점들을 깨달은 것이다.  

 

능동순종 사상을 버려야 하는 이유

그리스도는 아담이 지키지 못한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의로움을 얻으려고 성육신하신 분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먼저 보내신 율법을 통해 장차 구원자로 오실 자기의 의로우심을 미리 계시하셨다. 율법은 그리스도의 그림자(히 10:1)로서 특별계시였다. 그리스도는 율법이 요구하고 제시한 구원의 완전한 자격을 가진 사람, 즉 율법의 모든 요구와 지시가 다 실현된 의롭고 거룩하신 분으로 오셨다.

그리스도는 시종일관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우리의 불순종과 반역의 죗값을 하나님께 갚아드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죄인들에 대한 율법의 의로운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리하여 ‘율법의 마침’(롬 10:4)이 되시었다.

그리스도는 율법에 순종하여 의로움을 얻으신 것이 아니다. 율법이 지시하고 요구하는 완전한 의인으로 오시어 율법의 요구에 의해 죽어야 할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시고 저주 속에서 죽으셨다 (갈 3:13).

회심준비론의 문제점들을 깨달았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능동-수동순종이라는 거짓 교리마져도 버리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율법이 계시하신 모든 의로움이 실현된 인격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율법이 지적하는 죄와 저주에 잡혀있는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까지 바치는 순종으로 우리에게 죄용서-칭의를 주었다.

율법은 단지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지적하여 그리스도만을 믿음으로 구원 얻게 하시려고 왔을 뿐이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완전히 이루어진다. 구원을 위한 다른 조건은 없다. 하나라도 있다고 하면 이단이다. 그런데 청교도들은 율법이 없었다면,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했다고 가르쳤다. 참으로 망령된 자들의 괴이한 사변이었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최근 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Ph.D)에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고,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2021년 5월 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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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믿음으로 2021-07-26 13:55:24
예수님의 온전한 모든 순종하심은 이것만이 아닌 십자가를 지시는 순종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참사람으로서도 "본래의 의"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뚝딱뚝딱 척척 아무 어려움이 없이 순종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는 없으시지만(히4:15) 우리와 같은 참사람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돌아가셔야 될 때가 왔음을 아시고 이르신 말씀 속에 잘 표현되어 나타납니다. 극적인 표현이 많이 있는 새번역 성경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여야 할까? '아버지, 이 시간을 벗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할까? 아니다. 나는 바로 이 일 때문에 이 때에 왔다. .." -요12:27, 새번역

참사람이신 예수님께서는 부담도 분노도 피곤함도 고통도 겪으셨지만 그럼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온전한 모든 순종을 아버지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참사람이신 예수님께서는 크게 두 가지 순종을 하셨습니다. 땅에서 아버지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끝마치시고 완성하시는 순종을 하셨고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는 일을 완수하시는 순종을 하셨습니다.
"...아니다. 나는 바로 이 일 때문에 이 때에 왔다. .."(요12:27, 새번역)
이 두 번째 순종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케 됨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온전한 모든 순종하심은, 능동적 순종 지지자들의 주장하는 율법순종으로 의를 획득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사함을 이루신 것이 전혀 아닙니다. 이 주장은 진리가 아닙니다.
참사람이신 예수님께서는 크게 두 가지, 땅에서 아버지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끝마치시고 완성하시는 순종을 하셨고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는 일을 완수하시는 순종을 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 모든 순종을 아버지하나님께서 받으셨고 예수님을 높이 올리셨습니다.
이 두 가지 모든 순종이 성육신하셔서 참사람이 되신 예수님께서, 참사람으로서 아버지하나님께 드리신 온전하신 모든 순종입니다.


예수님께서 참사람으로서 드리신 모든 순종은 참사람이신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본래의 의"에 의해 행하신 모든 순종입니다.
예수님의 본래의 "의"(righteousnes)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올바르심"은 하나님의 공의와도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사랑과도 전혀 충돌되지가 않는 같은 방향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신실하시며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고(요3:16) "본래의 의"를 가지고 계신 참사람이신 예수님의 "의로운 행동"을(롬5:18) 통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되었습니다.(롬5:8)

칼빈은 예수님의 "본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고 가르쳤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온전한 모든 순종하심을 받으시고 우리가 아닌 "예수님을 높이셨음을" 우리가 증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요3:16) 한 부분입니다.
서박사님의 지적대로 우리가 참사람이신 예수님과 연합되어도 우리는 신화되지 않고 영원히 피조물인 것을 직시해야만 되며 신화가 아닌 피조물의 회복됨인 것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2021-07-26 03:18:16
율법이 말하는 "율법의 의"의 성취는 예수님의 율법준수가 아니라 복음을(요3:16) 듣고 그를 믿음(요3:16)으로 나에게 적용되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대속"하심입니다.

일각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은 죄사함뿐이며 우리가 다시 죄를 짓는 순간 그것은 깨진다고 하는 주장은, 성도인 우리가 회개할 수 있다는 것의(요일2:1) 의미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였다는 것의 의미를 충분할 만큼 이해하는 것이 부족한 상태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잠깐 주제에서 빗나가서 이글을 읽는 일반 성도님들을 위해 말씀드립니다.
물론 복음은 어린아이도 알고 믿을 만큼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것 역시 복음의 핵심에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공부해나가는 것 또한 어린 아이도 할 수 있을 만큼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진리의 정확함과 명확함과 오차 없음을 증명하며 드러내야 하는 일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정확함과 명확함과 오차 없음을 성경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 것도 성경을 공부하는 것도, 어린아이가 할 수 있을 만큼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연구는 어렵더라도 기준 그대로 제대로 해야만 합니다.


그럼 "본래의 의"를 가지고 계신 예수님의 "본래의 의"에 의해 행하신 모든 순종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순종하신 모든 순종을, 능동적 순종 지지자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순종이 '의'다. 예수님의 순종은 하나인데 두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을 한 것이며 예수님께서 순종하신 율법순종의 정점이 이웃사랑의 절정이신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며 이것이 능동적 순종으로 불리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속죄(대속)를 이루신 것이 수동적 순종으로 불리고 이것은 두 가지로 설명을 했을 뿐 둘이 아니라 하나의 순종이다."
이 주장은 사실과 다르고 진리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순종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수여자이시고 성자하나님이시며 참사람으로서도 "본래의 의"를 가지고 계십니다. 이 "본래의 의"에 의해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행동은 자연스럽게 율법의 모든 정신까지 지켜지십니다.
아내에게 이혼증서를 써주라는 모세의 율법 수준이(신24:1) 아닙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말과 행동 하나 하나가 모두 성부하나님의 뜻대로 말씀하시며(요12:49) 행하시는(요5:19) ,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온전한 순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아버지 뜻대로,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시기도 하셨으며 지붕을 뜯고 달아내린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심으로 예수님께서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알게 하신 일도 모두 성부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순종 수준의 순종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땅에서 성부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완수하셨습니다.(요17:4)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기 전 예수님의 기도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개역 성경도 극적 표현이 많은 새번역 성경도 한글흠정역 성경도 모두 포인트를 잘 표현하여 번역했습니다.
"내가 아버지를 땅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곧 내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끝마쳤나이다" -요17:4, 한글 흠정

오직 믿음으로 2021-07-26 03:14:57
먼저 개역성경에 "율법의 요구"로 번역된 로마서 8장 4절 말씀의 헬라어 성경(ABP_GRK)의 두 단어는 정당한 요구나 권리를 말하는 δικαίωμα(dikaíoma)와 법이나 율법을 말하는 νόμου(nómou)입니다.
4 ίνα το δικαίωμα του νόμου πληρωθή εν ημίν τοις μη κατά σάρκα περιπατούσιν αλλ΄ κατά πνεύμα

이 "율법의 요구"를 번역한 몇 개의 주요 언어 번역을 보겠습니다.
Latin Vulgate
4 ut "iustificatio legis(칭의 율법)" impleretur in nobis qui non secundum carnem ambulamus sed secundum Spiritum
Clementine Vulgate - Clementine text of the Latin Vulgate Bible
4 et "justificatio legis(칭의 율법)" impleretur in nobis, qui non secundum carnem ambulamus, sed secundum spiritum.
Wycliffe - John Wycliffe's Translation
4 that "the iustefiyng of the lawe(칭의 율법)" were fulfillid in vs, that goen not aftir the fleisch, but aftir the spirit.
Geneva Bible
4 That that "righteousnes of the Law(의 율법)" might be fulfilled in vs, which walke not after ye flesh, but after the Spirit.
Tyndale - William Tyndale's Translation
4 that "the rightewesnes requyred of the lawe(의 요구 율법)" myght be fulfilled in vs which walke not after the flesshe but after the sprete.
개역개정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한글흠정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능히 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셨나니 곧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또 죄로 인하여 육신 안에서 죄를 정죄하셨느니라 4 이것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는 우리 안에서 "율법의 의"가 성취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율법은 죄로 심히 죄되게 하며(롬7:13) 정죄하는 것이고
죄 있는 헬라인뿐만 아니라 하나님 백성 된 유대인도 죄 아래에 있음을 선포하며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롬3:19) 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로 온 인류는 죄 아래에(롬5:18) 있습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근거는 "죄인은 피를 흘려 죄의 값을 갚으라"는 것이고 "죄를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에게 율법이 "요구하는" 근거이며 "율법의 의"입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율법의 기능 중 두 가지는, 죄인을 정죄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속죄의 방식이 제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죄인들에게 율법이 내세우는 의는 "죄인은 피를 흘려 죄의 값을 갚으라"는 것이고 "죄를 없게 하라"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속죄의 방식대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을 믿고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이 요구하는 것이 이루어진 것이며 죄인에게 율법이 근거로 내세우는 "죄를 없게 하라"는 율법의 의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2021-07-26 03:10:11
우선 정목사님께 구분해 주셨으면 하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고 넘어가겠습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호6:7 말씀의 "아담"이란 단어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현재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여기에 대한 정목사님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을 말씀드리면,
첫 사람 아담이 범죄로 첫 언약도 어겼고 한사람의 범죄로 제한하기엔 전 인류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고 둘째아담이자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의 순종과 세우신 새 언약도 역시 전 인류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첫 언약은 복수인 다수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모세의 율법입니다. 히브리서 9장 말씀을 보면 첫 언약은 모세의 율법임을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8장 말씀을 보면 첫 언약은 모세의 율법임이 더욱 명확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새 언약도 역시 복수인 다수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신 언약입니다.

따라서 첫 언약과 새 언약을 설명하실 때에 초점을 불순종과 순종으로 전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두 사람의 각 개인에 맞추어서 설명할 때에는 첫 사람 아담과의 첫 언약 그리고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세우신 새 언약으로 설명하는 것과,
복수인 다수의 "하나님의 백성들"에 초점을 맞추어서 설명할 때에는 아브라함의 유업을 이어받을 당시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첫 언약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 대속을 이루심을 통해 완성하신 복음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새 언약 특히 믿음을 통해 모든 민족에게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유업을 이어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확장시키셔서 모든 민족으로 확장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새 언약을 설명하는 것,
바로 단수인 첫 사람 아담의 첫 언약과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의 새 언약 그리고 복수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첫 언약과 새 언약, 이 둘을 구분하여 설명하시면 성경을 배우는 성도님들이 오해하지도 혼란에 빠지지도 않고 더 잘 구분하여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본래의 의"를 말씀하셨던 정목사님의 견해를 지지하며,
"본래의 의"를 가지고 계신 예수님의 "본래의 의"에 의해 행하신 모든 순종에 대해 말하기 전에 "율법의 요구"에 대해 먼저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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