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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역사와 1950년대 신복음주의(W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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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역사와 1950년대 신복음주의(WEA)
  • 정이철
  • 승인 2021.09.07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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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칼빈과 총신의 개혁신학과 복음주의 신학의 공통점과 차이점'(크릭)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함께 읽기를 권장합니다.)

앞의 글에서 전통적 복음주의가 루터의 종교개혁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칼빈도 루터와 다른 종교개혁자들이 바르게 세운 성경적 신학들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그러나 칼빈이 수용하지 않았던 루터의 종교개혁으로부터 시작된 신학들, 즉 복음주의는 이후 역사에서 점점 심각하게 전개되었다. 복음주의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살펴보자.


1. 복음주의의 시작 - 루터의 종교개혁

음녀 로마교회의 치마폭으로부터 피 흘리는 싸움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구출하여 교회 속으로 회복시킨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이 복음주의의 시작이다. 칼빈이 루터와 다른 종교개혁자들이 바르게 세운 신학들을 그대로 수용했으므로 칼빈이 구축한 개혁신학과 루터로부터 시작된 복음주의 신학은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많다.

그러나 루터는 이신칭의를 먼저 말하기는 했으나 각 사람에게 반드시 먼저 율법이 작용함으로 이루어지는 이신칭의를 가르쳤다. 구원을 위해 먼저 율법 앞에서 거꾸러지는 경험이 있어야 이신칭의를 일으키는 믿음이 가능해진다고 가르쳤다. 루터는 이신칭의가 교회의 신앙이 되게 만들었으나 동시에 부당하게 율법과 연관시키는 실수를 범했다. 
 

"구원은 믿음뿐이라고 로마교회에 대항해서 가르친 루터가 율법을 구원의 길로서 인정해준데 있다고 할 것이다. 구원은 믿음이라고 하였지만 율법과 무관한 구원이 아니라 사망과 정죄 세력인 율법에서 복음으로 불려내짐으로 얻는 구원이다. 루터에게는 율법과 복음이 사망과 생명처럼 마주선다. 그의 이해에 따르면 아직도 율법은 구원의 길로 역사한다."(서철원, 복음과 율법의 관계, 10)

그리고 루터는 성찬에서도 여전히 음녀 로마교회의 요소를 유지했다. 전체적으로 루터는 복음을 회복하는 일에 크게 기여했으나, 그 자신이 로마교회의 사제로 살면서 몸에 익혔던 것들의 일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데 약간의 한계를 보였다. 그래서 루터는 복음주의 신학의 기초를 놓은 개혁자로 이해된다.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의 약점을 보완하여 교회의 신앙을 성경에 맞게 더 온전하게 개혁한 신학자는 칼빈이다. 칼빈이 구축한 종교개혁 신학을 개혁신학(Reformed Theoogy)이라고 한다.  
 

2. 영국의 국교회주의(성공회)

루터의 종교개혁의 영향 하에 영국의 국왕 헨리 8세는 자신의 정치적 노선을 따라 로마교회와 단절하고 독특힌 영국 성공회를 출범시켰다 (1538년). 이신칭의를 주장했으나 여전히 로마교회의 행위구원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전적타락을 부정하는 알미니안주의와 깊이 결탁되었다. 그러므로 이후 영국 성공회는 복음주의 운동의 중심으로 발전했다. 
 

3. 알미니안주의

초기에 칼빈의 신학을 배우기도 했던 알미니우스(1560-1606)는 이신칭의를 주장하면서도 하나님의 선택과 전적타락을 부정하는 신학, 즉 인간의 구원에 대한 역할을 강조하였다. 이후 그의 신학은 복음주의 교회들의 핵심적 신학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4. 영국의 청교도주의

영국 국교회를 더 온전하게 개혁하기 위해 칼빈의 종교개혁에 고무되어 시작되었으나 소수의 회중주의 청교도들의 신학이 영국의 종교개혁을 더 많이 주도하게 되었다. 청교도들의 신학은 이신칭의를 주장하나 동시에 사람의 역할과 행위를 교묘하게 강조하는 율법주의로 발전되었다. 행위언약과 회심준비론이 그 예이다. 지금까지 영국의 청교도주의는 개혁교회의 신학으로서 최고의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주장되었으나, 그것은 그릇된 신념이었을 뿐이다. 청교도 신학은 복음주의 교회의 신학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5. 개신교 정통주의

개신교 정통주의(Reformed Orthodoxy)란 신학하는 방법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종교개혁의 격랑이 어느 정도 지났고, 칼빈이 완성한 종교개혁 신학을 유럽 교회들 속으로 정착시키는 작업이 일어났을 때의 신학 방법이다. 신앙고백서들과 교리문답이 그 대표적인 형태이다. 웨신서가 탄생되었을 때(1647)가 개신교 정통주의가 가장 만개했다.

개신교 정통주의의 문제는 칼빈과 개혁자들이 추방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다시 신학의 방법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칼빈이 배척했던 중세 로마교회의 신학방법이 칼빈의 신학을 유럽의 교회에 안착시키려고 노력했던 개신교 신학자들의 신학 방법이 되어버렸다. 중세 아리스터텔레스의 철학을 중시했던 로마교회의 신학은 스콜라주의(Scholasticism)였고 이 시기 유럽의 개신교 신학자들이 또 그것을 추종하여 신학했으므로 '개신교 스콜라주의'(Protestant Scholasticism)라고도 한다. 그 신학 방법이 칼빈에게서 배척되었던 것이므로 개혁신학 운동으로 볼 수가 없다. 복음주의 운동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6. 독일의 경건주의

독일의 경건주의(Pietism)은 당시 유럽의 신학자들의 교리논쟁에 대한 반발, 즉 개신교 정통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했다. 경건주의의 핵심은 순결한 삶과 내적 성찰이었다. 그러나 경건주의는 점점 말씀보다는 감정과 내면의 빛 등의 신비체험으로 기울어졌고, 구원을 위한 삶을 강조함으로 종교개혁의 이신칭의를 파괴하는 나쁜 면들을 보였다. 경건주의는 개혁교회의 신학(신앙)에 합당하지 못하고 복음주의에 속한다.
 

7. 신대륙의 청교도주의(에드워즈, 1차 대각성)

영국에서 박해받았던 청교도들이 목숨 걸고 대서양을 건너 새로운 땅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미화되고 칭송받았다. 당시 신대륙에서는 그들의 신앙을 검증하고 감독할 위의 권세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맘대로 다 했다. 표면적으로는 이신칭의를 강조하였고 알미니안주의와 국교회주의가 대서양을 건너오는 것을 경계하였다. 그래서 최고의 개혁신학이라고 오해되었다.

그러나 성령이 율법을 통해 영적 각성을 일으키면 사람이 스스로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는 길을 찾아가게 된다는 회심준비론 목회에 치중했다. 에드워즈의 대각성은 회심준비론 신학의 실천 무대였다. 에드워즈와 동료 목회자들이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율법의 저주를 선포하여 사람들의 심령을 미약하게 만들면 사탄이 그 사람들을 가지고 노느라 분주했다. 쓰러지고 통곡하고 밤새도록 누워있고 환상과 입신에 빠지고 ... 사탄의 축제가 뜨겁게 전개되었다.

신대륙의 청교들의 신학은 오순절 운동의 전조였고, 율법주의, 알미니안주의, 깨닮음 신비주의(성령의 회심체험) 등 여러 이단 사상들의 혼합이었다. 그들의 신학이 최고의 개혁신학이었다는 것은 순 거짓말이고, 실상은 매우 타락한 복음주의였다.

신대륙의 청교도 후예들은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와 자신들의 율법준수 신앙을 강조하다가 그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잃어버렸다. 십자가를 잃어버리니 율법을 지킨 인간 예수만 남았고, 결국 성육신이 약화되었다. 성령에서도 하나님의 신성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활동력으로 격하되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성부 하나님만 믿는 이단 유니테리안으로 넘어갔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우주적 도덕 기준에 연관시키는 자유주의 신학으로 기울어졌다.  알미니안주의와 에드워즈-청교도주의가 현재 복음주의 교회들의 신앙의 중요한 바탕이다.

 

8. 영국의 웨슬리안주의

1703년에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영국에서 존 웨슬리, 신대륙에서 조나단 에드워즈가 태어났다. 이후 두 사람의 신앙 노선이 전혀 다르게 발전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졌으나, 꼭 그런것만은 아니다. 웨슬리의 아버지는 알미니안 성향이 강한 국교회 속의 고교회에 속한 성직자였고 웨슬리도 아버지의 영향 하에 국교회의 고교회 성직자가 되었다. 웨슬리가 어떤 사람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에 의하면 37때까지 성경적 이신칭의 신앙에 대해 듣고 배운적이 없었다.

웨슬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완전하게 회개하고 순종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행위구원주의를 믿고 가르쳤다. 웨슬리는 나중에 경건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대서양 건너 신대륙에서 일어난 대각성 부흥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에드워즈가 저술한 부흥에 관한 책 세 권을 직접 축약 출판하여 영국에 소개하여 많은 사람들이 읽게 했다. 현재 복음주의권에서 가장 많은 수의 교회는 아마도 웨슬리의 신학을 따르는 교회들일 것이다. 


9. 찰스 피니의 부흥주의(2차 대각성)

미국의 2차 대각성의 주역으로 칭송받고 있는 찰스 피니(Charles Grandison Finney,1792-1875)는 이단사상으로 인해 자신에게 목사 안수를 주었던 미국 장로교단 노회로부터 면직된 사람이다. 그는 아담의 원죄의 유전,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하나님의 선택 등의 기독교의 핵심적 신앙을 거부했던 이단이었다. 피니는 미국 복음주의 교회들 속으로 구원과 성령의 역사가 전적으로 인간의 선택, 노력, 준비에 따르는 결과라고 주장하는 알미니안주의보더 더 심각한 펠라기우스주의를 전파한 이단이었다. 초기에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기도 하는 등 신비주의 이단성향도 매우 강했다. 피니의 부흥주의를 복음주의 교회들이 칭송하고 따름으로 복음주의는 점점 사탄주의와 가까워졌다.    

 

10. 미국의 오순절주의

1900년대 초 미국에서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을 재현하려는 망상이 마귀의 사람들에 의해 기어이 실현되었다. 거짓 방언, 영서, 방언찬양, 예언, 입신 등이 성령재세례(반복적 세례)의 징조로 도입되었다. 처음에는 이단이라며 기존의 교단들이 그들을 멸시했으나, 점차 모든 교회들이 그들에게 점령당했다. 오순절주의는 Assembly of God 등의 자체 교단을 형성하여 크게 성장하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기존의 교단들 속으로 물처럼 조용히 스며들면서 전파되는 것이 더 많았다. 그리하여 버젓하게 장로교회 간판을 달고 있으나 속으로는 오순절주의에 지배되어버리는 현상이 전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다.

오순절주의는 기독교를 성경과 분리시키고 동시에 기독교를 무당종교로 만드는데 크게 공헌했다. 현재 복음주의 교회들의 신앙은 알미니안주의, 에드워즈-청교도주의, 오순절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오순절주의의 특징은 거짓 방언 신비현상과 신내림 CCM, 그리고 성경이 개인에게 즉각 즉각 주시는 음성과 예언 등이다.
 

11. WCC-종교다원주의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는 세계적인 교회일치운동(에큐메니컬 운동)을 목적으로 1948년에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계속 발전하여 이제는 모든 종교들에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고, 로마교회와의 협력을 노골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WCC 문제로 한국에서 예장 통합과 합동이 1959년에 분열했다. 이후 통합은 로마교회와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한국에서 예장 통합과 WCC-종교다원주의가 복음주의 교회에 속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12. WEA와 신복음주의 : 복음주의의 귀결

위의 8가지 요소들을 전체적으로 또는 일부를 수용하는 복음주의가 1950년대에 이르러 크게 변신하였다. 복음주의의 길로 가는 교회들과 목회자들은 사탄의 은혜를 입어 날로 날로 성장하고 부유해졌다. 그러나 개혁교회의 목회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개혁교회는 1900년대 초부터 일어난 자유주의, 즉 성경의 영감,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등의 성경의 핵심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과 싸워서 간신히 진리를 지켜냈다. 그러나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 모습이 성공한 것 같지 않았고 처량했다. 그러므로 개혁교회 속에서 성공하는 복음주의 교회들의 신앙의 길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무렵에 칼 헨리와 헤럴드 오켕가가 새로운 복음주의 기치를 들고 일어났다. 그들은 ‘성경의 진리’와 ‘세상과의 소통’, 즉 성경도 지키고 세상에서 성공도 할 수 있다는 기치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들어 올린 깃발의 이름이 바로 ‘신복음주의’(Neo-Evangelical)이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고, 그러나 신앙이 변절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싶지는 않은 나약한 개혁주의자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고통을 느끼지 않고 타락할 수 있는 편안한 길을 만들어 준 것이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플러신학교와 빌리그래함으로 대표되는 신복음주의는 곧 이어 자유주의처럼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너무나 존경했던 존 스토트도 신복음주의 교회들의 연합을 위해 결국 성경의 영감을 포기했다. 이제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는 여성안수 제도는 성경의 어떤 부분이 하나님의 절대적 명령의 말씀이 아니고 시대적 상황에 관련된 재해석해야 할 내용이라는 신복음주의 교회들의 변질된 성경관에 의해 자리를 잡았다.

1994년에 제임스 패거 등이 중심이 되어 신복음주의 교회들이 로마교회와의 신앙합의문을 만들었다. “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복음주의와 천주교가 함께 함)이라는 문서였는데, 그것은 로마교회에도 구원이 있고 우리와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라고 인정하는 것이었다. 로마교회와 함께 그 문서를 작성했던 단체는 1942년에 출범된 NAE(미주복음주의협회)였다. 그런데 이 단체가 1951년에 WEA에 회원가입하였고, 이후 WEA의 가장 활동적이고 큰 규모의 중심적인 기관이 되었다.

NAE가 WEA에 가입할 때 이미 로마교회와 함께 작성한 신앙합의문을 부정하거나 버리지 않았다. 그들의 그 정신이 그대로 WEA로 유입되었다. 이후 WEA는 로마교회와 교황에 대해 매우 친숙하고 존경하는 자세를 보인다. 최근의 일을 보여주는 다음의 영상을 보면, WEA는 로마교회 교황에게 찾아가서 교황을 ‘교황 성하’라고 호칭하면서 존경을 표시한다.
 


신복음주의 목회자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종교다원주의 - RCC, WEA, WCC
신내림 CCM 
오순절주의 - 방언기도, 환상, 입신, 투시
교회성장주의 - 고객 중심의 교회
'커뮤니티 교회' 개념
율법주의 - 행위구원 사상
영성신학, 영성예배

알미니안주의
여성안수, 여성강도권 

 

 

신복음주의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신근본주의자' '분리주의자'라고 비판한다. 그것은 마치 신복음주의가 등장하면서 자신들에게 동참하지 않는 개혁주의자들을 향하여 '근본주의자'라고 비난했던 것과 같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최근 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Ph.D)에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고,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2021년 5월 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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