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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교수의 결론,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 율법을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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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교수의 결론,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 율법을 따르라!
  • 정이철
  • 승인 2022.01.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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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교수(이후 김재성)는 이미 비성경적인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를 줄기차게 주장하다가 합동 이대위의 조사 대상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그가 자중하지 않고 회심준비론을 주장하다가 합동 이대위의 조사 대상이 되어 버린 정성우가 회심준비론이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 낸 책에다 추천사를 썼다.

그런데 김재성의 추천사 속에는 반율법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김재성이 뭐라고 했는지 보자.

“웨스트민스 총회에서는 반율법주의와 반-신율법주의가 동시에 제기되어 상당한 논쟁을 벌였다.” (김재성, 21 페이지)

“청교도 내에서 소수이지만, 반율법주의자들이 일어나서 엄밀하고도 규칙적인 경건의 삶을 훈련하는 일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했다.” (김재성, 21 페이지)

반율법주의(Antinomianism)는 하나님께서 값었이 주시는 은혜의 변혁적 능력을 높이는 동시에 ....” (김재성, 22 페이지)

“왜 이러한 반율법주의가 17세기 중반에 종교 개혁의 격동기를 거치고 있던 잉글랜드에서 태동하게 되었던가?” (김재성, 22페이지)

반율법주의자들은 칭의 교리에 내포된 신학적 의미를 과대하게 포장했다.” (김재성, 22 페이지)

반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 나머니 결코 하나님께서는 값었이 주시는 칭의 때문에 성도들의 죄를 보시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재성, 22 페이지)

“웨스터민스터 총회에서 반율법주의자 존 이튼과 토비아스 크리스프는 칭의의 원인으로서든, 칭의의 증거로서든, 율법의 요구 사항들을 충족시키는 노예 상태에서 자유롭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김재성, 23 페이지)

반율법주의자들로 인해서 순종의 행위가 성화 가운데 동반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약화되고 말았다.” (김재성, 23 페이지)

반율법주의자들은 구원과 관련하여 모든 인간적인 참여의 행위를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는 약점을 노출하고 말았다.” (김재성, 23 페이지)

“가장 영향력 있던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신학자들, 윌리엄 고그, 토마스 가택커와 바인스가 나서서 철저하게 반율법주의자들에 대처했다.” (김재성, 23 페이지)


김재성은 이와 같이 반율법주의가 잘못되었다고 구구절절이 말했다. 김재성은 제자 정성우의 회심준비론을 옹호하는 자신의 추천사를 반율법주의에 대한 말들로 채웠다. 회심준비론과 반율법주의는 분명한 연관이 있고, 우리가 회심준비론을 거부하면 자동적으로 반율법주의로 기울어진다는 논리이다.
 

반율법주의란 무엇인가?

반율법주의는 청교도주의가 꽃피워졌던 1630-40년대 영국에서 일어났다. 반율법주의가 기승부리던 때가 곧 웨신서가 작성되던 때(1647년)이었다. 청교도 신학의 율법주의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반율법주의와 가장 반대되는 것은 알미니안주의이다. 알미니안주의는 인간이 의롭다하심을 얻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형태의 참여가 크게 작용한다고 가르친다. 내가 나를 구원하려고 노력하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다는 것이 알미니안주의이다. 그런데 반율법주의는 그와 정 반대이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얻는 과정에는 인간의 노력이나 참여가 전혀 없다고 강조한다.

반율법주의의 칭의신앙은 그리 나쁘지 않다. 겉보기에 사람이 스스로 그리스도에게로 회심하여 칭의를 얻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이미 죽은 자를 성령을 통하여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다. 오직 성령의 선물로 주어지는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간주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율법주의의 알미니안 신학의 핵심을 거부하는 자세는 옳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께서 구원 받은 신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순종하고 실천하라고 명령하신 것들이 있음을 경시한다는 것이다. 구원 받는 과정에 사람의 역할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사실이나, 중생한 이후 성령 안에서 말씀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성경의 말씀들을 가벼이 여기거나 무시하는 것이 반율법주의의 문제이다. 그래서 구원파처럼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거나 죄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위험성이 도사린다.

반율법주의의 병폐에 대해 크게 질렸던 청교도 리차드 백스터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이라도 이후의 삶에서 철저한 회개과 순종(율법준수)에 실패하면 다시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강조하는 신율법주의를 주장하였다. 반율법주의나 신율법주는 모두 이단사상이다.

김재성은 왜 정성우의 회심준비론 사상을 두둔하는 자신의 추천사를 반율법주의에 대한 말들로 도배하였을까? 먼저 율법의 기능으로 영적 품종을 조금 개량한 후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중생되어야 교회가 거룩해진다는 정성우의 회심준비론 이론을 두둔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회심준비론을 거부하면 교회가 율법준수를 가벼이 여기는 반율법주의로 기울어지고, 그러면 저질 교회가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 책에 김재성 교수가 추천사를 썼다
이 책에 김재성 교수가 추천사를 썼다

 

그런데 반율법주의에 대한 김재성의 말들을 읽으니 다음과 같은 재미있고 심각한 사실이 발견되었다.

1. 웨민총회의 반율법주의 저격수들은 능동순종 반대자들

김재성은 끈질기고 집요하게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를 주장하다가 그만 합동 이대위의 조사대상이 되는 인생 최대의 수모를 당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김재성은 정성우의 회심준비론 사상을 두둔하다가 그만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를 반대하였던 인물들의 신학을 높이고 말았다.

“가장 영향력 있던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신학자들, 윌리엄 고그, 토마스 가택커와 바인스가 나서서 철저하게 반율법주의자들에 대처했다.” (김재성, 23 페이지)

필자는 윌리엄 고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나, 토마스 가테이커(Thomas Gataker)와 리차드 바인스(Richard Vines)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하심을 인정하지만 그것의 공로가 신자들에게 전가되어 칭의를 준다는 이론을 반대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를 받음으로 칭의를 얻는 다고 주장했고, 성경에서 능동적 순종의 의 교리의 근거되는 내용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재성이 우려했던 반율법주의를 저격하는데 가장 앞장선 사람들이 능동순종 사상을 반대한 사람들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 김재성은 칭의에 대한 사람의 역할을 인정

김재성은 구원과 율법의 기능이 연관되었다는 정성우의 회심준비론을 옹호하다가 구원에 대한 사람의 역할과 참여를 인정하는 말을 하고 말았다.

“반율법주의자들은 구원과 관련하여 모든 인간적인 참여의 행위를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는 약점을 노출하고 말았다.” (김재성, 23 페이지)

김재성은 구원을 위한 사람의 참여와 행위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반율법주의의 심각한 약점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사람은 자기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행동하고 하나님의 초청에 대해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재성이 구원에 대한 알미니안 신학을 추종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율법의 기능과 성령의 역사로 영적 각성을 일으켜서 사람이 스스로 죄를 회개하고 공적인 수단(예배, 기도, 회개, 성경공부, 설교듣기 등)을 활용하면서 구원을 사모하게 만든다는 회심준비론 사상과 김재성이 같은 신학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영적각성된 사람이 스스로 회개하고 예배드리고 설교듣기를 하면서 구원을 추구한다는 회심준비교리와 김재성이 말한 ‘구원과 관련하여 모든 인간적인 참여의 행위’는 같은 내용이다. 이런 내용은 개혁신학이 아니다. 청교도에 빠지면 이렇게 되는 모양이다.
 

3. 성도들에게 율법을 따르라고 권하는 김재성

놀라운 사실은 정성우의 회심준비론 사상을 옹호하는 자신의 글에서 김재성이 신약 성도들에게 율법을 따르라고 권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해서 뜨거운 마음으로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성도는 순결한 마음으로 율법을 따르고자 노력한다.” (김재성, 23페이지)

나는 신약 성경에서 신자들에게 율법을 따르라고 가르치는 내용을 단 한 줄도 본 적이 없다.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에게서 율법의 지시와 요구가 이루어진다는 말씀은 보았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에게서 율법을 지키기(따르기)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나와야 한다는 가르침은 전혀 본 적이 없다.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롬 7:1)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롬 7:4)

성경은 우리를 대신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율법을 따라 죽었을 때, 우리도 율법에 대해 이미 죽었으므로 더 이상 율법을 따르거나, 율법을 지키거나, 율법을 실천하거나 할 일이 없어졌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 (in the new way of the Spiri)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롬 7:6)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롬 8: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2)

성경은 그리스도와 함께 율법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새롭게 된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하심을 따라 거룩하고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을 이루어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김재성은 신약의 성도가 “순결한 마음으로 율법을 따르고자 노력한다”고 함으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는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화는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서 이를 악다물고 그리고 성령의 힘도 받아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은 율법주의이다. 율법주의는 구원을 얻기 위해 또는 구원을 지키기 위해 또는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율법으로 돌아가 율법의 멍에를 메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사도 바울이 저주한 이단사상이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현재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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