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순종 교리는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성경에 근거하는 이론이 아니다. 성경을 설명하려고 시도한 신학자들의 신학, 즉 창조언약-행위언약에 근거하는 이론이다. 그러나 능동순종을 야기한 그 언약신학의 성경적 근거는 더욱 더 희박하다.

행위언약 개념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마이클 브라운과 자크 킬의 <언약신학으로의 초대>(조호영 역, 부흥과개혁사)를 읽었다. 그 언약신학을 절대적으로 추종하는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위언약이 개혁파 전통 안에서 체계화되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다른 전통에 있는 많은 이들은 행위언약을 가르치지 않으며, 개혁파 전통 내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이 언약에 문제를 제기했다. 따라서 행위언약을 가르치고 이 언약에 대해 빛을 비추어 주는 성경 구절들을 탐구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브라운 & 킬 2020, 65)

저자들은 자신들이 추종하는 행위언약 신학이 개혁파 전통, 즉 칼빈과 신학 라인을 같이 한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제시된 신학이지만, 다른 신학 전통에서는 전혀 인정되지 않고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심지어 개혁파 전통 안에서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인정하였다.

이 문제는 다수-소수로 그 진위를 가릴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종교개혁이 시작될 때의 상황에서 숫자로 보면 종교개혁 세력이 로마교회와 교황의 세력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였으나, 결국 종교개혁 세력이 로마교회를 이겼다.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의 진리를 발견하고 붙들었기 때문이다. 능동순종 신학의 진위는 행위언약 신학의 성경적 타당성에 의해 결정된다. 행위언약이 성경을 잘못 설명하는 신학이라면, 능동순종은 아무 가치없는 거짓사상이다.

과연 행위언약 개념의 성경적 근거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 브라운과 킬은 다음의 세 가지를 행위언약의 성경적 근거로 제시했다.

1) 창세기 2-3장 (브라운 & 킬 2020, 65-74)

저자들은 생명나무의 의미에 대해 오해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아담이 율법을 지켜서 획득한 자격에 근거하여 생명나무를 먹음으로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창세기 3장 22절(“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의 하나님의 진술에서 ‘~도’(also)는 아담이 생명나무를 아직 따 먹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시험에 통과함으로써 행해진 의가 없이는 생명나무를 먹을 권리가 아담에게 없었으며, 그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그는 생명나무를 먹을 수 있는 상급을 받을 자격을 잃었다. 이에 더하여, 생명나무의 상징적 가치는 아담이 그때 소유하고 있던 것보다 더 나은 생명을 가리킨다” (브라운 & 킬 2020, 71).

범죄하기 전 아담은 아직 생명나무를 먹기 전이었다고 한다. 율법의 지배를 충실하게 받음으로 인정되는 영생의 자격(공덕)을 획득한 후 생명나무를 먹고 완전한 영생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담은 어떤 상태에서 타락한 것인가? 죄인도 아니고, 의인도 아니고, 하나님 백성도 아닌 이상한 상태에서 범죄한 것이다.

쉽게 말해, 아무것도 아닌 아담이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인생을 끝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그에게 진노하시는가? 하나님이 무슨 이유로 그에게 저주하시는가? 그를 살려서 자기 백성 삼기 위해 사람이 되시어 대신 피 흘리고 죽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처럼 아담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면 기독교를 설명해 낼 수가 없다. 생명나무를 어떻게 해석해야 성경 66권이 보일까? 하나님께서 아담을 자기 백성으로 창조하신 직후 서로의 인격에 기초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었고, 그 언약의 상징물로 생명나무를 두신 것으로 해석해야 성경 66권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인다.

하나님이 자기의 신실하신 인격을 걸고 영원히 아담의 하나님이 되시기로, 그리고 아담은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기로 언약했던 것이다. 그 언약이 파괴되지 않는 한 영원히 아담이 하나님 백성의 복과 지위를 누리게 하신다는 차원에서 생명나무를 담보로 세우신 것이다.

생명나무는 아담이 율법의 지배를 충실하게 받은 후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을 받은 후 영생을 위해 먹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석하면 기독교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율법이 왕노릇하는 변종 기독교가 세워지게 된다. 칼빈도 생명나무를 이미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아담이 누리고 있는 영생과 복을 확신하는 것, 즉 태초의 아담에게 주신 성례전으로 해석했다.

 

“성례는 우리의 믿음을 더욱더 강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주께서는 어떤 때에는 성례로 약속하신 일을 우리가 믿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성례 자체를 우리에게서 빼앗으신다. 아담에게서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주지 않으셨을 때에 주께서는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하셨다(창 3:22).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아담이 잃어버린 불멸성을 그 과실이 회복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이 말씀을 다른 말로 옮긴다면, ‘나의 약속의 상징에 집착해서 헛된 확신을 즐기지 못하도록 불멸에 대한 소망을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을 그에게서 빼앗으리라’는 말이 될 것이다” (기독교강요, 4.14.12).

행위언약-능동순종을 주장하는 주류 개혁신학자들과 칼빈 사이에는 이와 같이 근본적인 노선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칼빈의 신학이 다수의 주류 개혁주의자들에 의해 변질되어 버렸다고 하는 것이다.
 
2) 이사야 24: 5절

저자들은 이사야 24:5절("땅이 또한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이 행위언약의 성경적 근거하고 주장하였다 (브라운 & 킬 2020, 75) .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영원한 언약’이 아담과 하나님의 행위언약이라면, 아담의 때에 일반 백성과 제사장이 구별되어 있었다는 것이고, 종과 상전이 있었다는 것이고, 공급자와 소비자가 있었다는 것이고, 돈을 빌리는 자와 이자를 받는 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내용을 말하면서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다고 책망하시었다.

하나님 백성으로 먼저 부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통해 맺은 시내산 언약을 배반했다는 것으로 파악해야 할 내용인데, 저자들은 아담과 하나님의 행위언약의 근거라고 오독하였다. 

3) 호세아 6:7절 (브라운 & 킬 2020, 75-76)

저자들은 호세아 6:7절(“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이 아담과 하나님의 행위언약의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담이 율법의 지배를 받기 싫어 맘대로 행동 한 것이 어째서 하나님께 반역이 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 무시, 하나님의 질서 무시의 죄에 해당한다. 하나님이 그것을 반역이라고 여기시고 영원히 죽이실 일인가?

호세아 6:7절을 아담과 하나님의 언약의 증거라고 보는 것은 맞으나, 행위언약의 증거는 아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복을 받은 아담이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기로 한 언약, 즉 첫 언약을 파기하고 하나님께 반역했다는 증거로 보아야 마땅하다.

아담이 하나님 섬김을 버리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반역했으나, 자기의 인격으로 아담과 맺은 언약에 대해 끝까지 신실하신 하나님이 아담을 대신하여 자신이 희생하심으로 파기된 언약을 복구하여 다시 아담을 살려내신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그러면 성경 66권과 그림이 같아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도 연결된다. 

4) 로마서5:12-19절 & 고린도전서 15:21-22절 (브라운 & 킬 2020, 76-77)

저자들은 로마서 5:12-19절이 그리스도가 아담의 파기된 행위언약을 복구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로마서 5:12-19절은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 충실하게 율법에 복종하여 영생의 자격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반역한 아담의 죗값을 자기의 의로운 목숨과 영혼으로 갚으시어 우리 믿는 자들에게 의가 되어주셨다는 뜻이다.

고린도전서 15:21-22절도 아담이 율법에 순종하지 않아 파기된 행위언약을 그리스도가 충실한 율법 순종으로 복구했다는 뜻이 아니다. 아담은 범죄함으로 우리 모두에게 죽음을 몰고 왔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뜻에 순종하시어 아담의 죗값을 대신 갚아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선물했다는 뜻이다.
 

맺는 말

능동순종 교리를 탄생시킨 행위언약의 성경적 근거로 주장되는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하나 같이 타당하지 못한 성경 해석이었다. 전통적 개혁신학이 창조-원죄-구원에 대해 가르치는 내용이 얼마나 성경에서 빗나가 있는지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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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