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면>
옥한흠 목사님이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설교를 들어보시오. 당신이 에드워즈에 대해 하는 말과 비교해 보시오. 에드워즈를 폄하한 것을 반성하고 회개하시기 바라오.   

 

“미국 역사를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어보셨다면, 공부를 하신 분이면, 조나단 에드워즈하면 대충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을 대부분이 알고 계십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은 250년 전의 인물입니다. 미국 건국의 정신적 기초가 된 청교도 신학을 대변하는 가장 탁월한 신학자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설교자요 또 저술가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일어났던 성령운동, 대각성부흥운동의 주역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프린스턴 대학교 초창기에 총장을 지내신 분이고, 그리고 그가 졸업한 예일대학에서는 그의 모든 설교와 그의 모든 저술을 총 집대성해서 30권이 넘는 전집을 출간했습니다.

한 사람에 대해서 이만한 분량의 전집을 내는 것은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만큼 그의 존재는 독보적입니다. 코넥티컷트주의 제일 큰 노스샘프톤 교회라고 하는 곳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한 23년 열심히 목회를 하고 난 다음 40대 후반에 갑자기 쫓겨났어요. 그렇게 위대한 인물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수수께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를 모시고 교회에서 계속 일을 하도록 할 것이냐 아니면 교회를 떠나게 만들 것이냐를 결정하는 신임투표가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남자들뿐이었습니다. 남자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졌어요. 230명의 남자 세례 교인들이 모여서 투표를 했는데, 조나단 예드워즈 목사님을 지지하는 표는 23표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다 떠나십시오! 이렇게 싸인을 한 것입니다.

왜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 일어났을까? 이유가 있습니다. 에드워즈 목사님은 그 교회에서 수 십년 목회를 하면서 참 많은 교인들이 구원을 받은 사람 같지 않다는 의구심을 갖고 계셨어요. 저 사람의 믿음이 진짜 믿음일까 하고 의심이 가는 경우도 를 너무 많이 보았던 거예요.

물론 그들은 신앙고백 잘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시냐고 물으면 뭐 조금도 틀림이 없는 정확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교회생활도 나름대로 열심히 합니다. 또 사회에서 그렇게 손가락질받을 만한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워즈 목사님이 볼 때, 참신앙을 가진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기 혼돈되었다는 거예요. 에드워즈 목사님도 자기 교인들을 놓고 어떤 사람들은 의심 성도로 아예 분류를 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이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냐? 적어도 예수를 믿는다면 세상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뭔가 드러나야 되는데, 그런 점에서는 별로 표가 안 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들에게 ‘당신은 예수 믿으니까 틀림없이 구원받습니다’라고 교회가 확신을 시켜 주는 것은 이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그는 판단을 했습니다. 잘못하면 그들의 영혼을 망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그는 드디어 칼을 빼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성찬을 한 달에 한번 이상 자주 했습니다. 그리고 성찬에 참여한다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에드워즈 목사님이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아주 강화시켜서 아무나 함부로 참석하지 못하도록 선을 그어왔어요. 신앙고백 잘한다는 그것까지는 안 되요. 안 되고 정말로 예수님을 알고 나서 크고 괄목할 만한 지속적인 변화를 체험한 사람이냐? 속 사람이 정말 변화된 사람이냐? 그래서 예수님 앞에서 자기의 죄가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죄인인가를 통감하면서 회개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냐? 그리고 예수님만이 진정 나의 구주요 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 사실 때문에 무릎 꿇고 감격하면서 주님 앞에 엎드려 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냐? 이런 내적인 변화와 체험이 있으면 성찬에 참여시키고, 없으면 참석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교인들이 반발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2,3년 갈등을 하고 씨름을 하다가 결국 교회에서 쫓겨나고 말았어요. 어떻게 보면 에드워즈 목사님이 그들의 신앙을 의심한 것이 타당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죠” (옥한흠 목사).
 

답변>
위의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에서 기독교 신앙을 왜곡하고 또한 에드워즈의 잘못된 (이단적인) 목회의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고 오히려 두둔하고 옹호하는 내용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오늘 한 가지를 말하고 다음에 이어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일어났던 성령운동, 대각성 부흥운동의 주역이었습니다” (옥한흠).

옥한흠 목사(이후 옥한흠)가 에드워즈를 성령운동의 사람으로, 대각성 부흥운동의 사람으로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옥한흠이 올바른 신학과 신앙을 가진 분이었으면 성령운동이라는 말을 사랑의 교회의 수천, 수만의 성도들 앞에서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운동이라는 말은 사람이 성령이 움직이고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함으로 성령의 역사가 유도된다는 개념인데, 우리가 입에 담아서도 안되는 망령된 것이고, 심각한 이단사상입니다.

‘성령운동’이라는 개념을 이단사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도 과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하나님께 속한 어떤 것이 아니고 하나님 그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주권과 작정과 뜻을 따라 역사하시는 분이시니, 사람이 성령의 사역을 유도한다는 성령운동 개념은 망령되고 이단적인 생각입니다.

그리고 성령운동은 반드시 큰 사이비들의 안수기도와 연관됩니다. 보통 사람들이 혼자서 성령과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더 얻으려고 금식하고, 회개하고, 기도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면, 반드시 영발이 쎈 사람에게 찾아가서 안수를 요청하는 것이 정해진 순서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영발이 쎈 사람에게 안수 받을 때, 거짓 방언과 몸이 떨리는 등의 괴이한 성령세례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악한 일들은 오순절 운동가들의 신앙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고, 오순절 운동이 조금 더 진보한 형태인 신사도 운동에서는 더욱 중시되고 강조되는 것입니다. 신사도 운동에서는 그런 안수기도를 임파테이션(impartation)이라고 합니다.
 

 

"옥한흠 목사에게서 전화가 왔었어요 ... '여보세요' 하니까 '나 옥한흠입니다'라고 ... '왜 전화를 했느냐?'고 하니까 ... '좀 만나게 시간 좀 내 주십시오!', '언제든지 오십시오' ... 선교 센터로 이 분이 오셨어요.

내가 ‘왜 왔습니까’ 하니까, '안수 좀 받으로 왔습니다'라고 ... '당신 같이 훌륭한 분이 왜 내게 안수를 받으려고 하십니까?'하니까 '내가 하고 있는 교육훈련(제자훈련) 학교가 조직은 잘되어 있는데 파워가 없어요! 가르치는 데에도 파워가 없고, 기도하는 데에도 파워가 없고 ... 파워를 얻기 위해 미국에 가서 저명하고 신령한 사람들에게 안수를 받아야 하겠다고 기도를 하니까, 마음속에서 성령이 말하기를 '한국에 성령 받은 사람이 있는데 미국까지 왜 가노? 왜 한국 사람을 무시하고 미국까지 가려고’ ... (옥한흠이) ‘한국 사람 누굽니까?’ 하니까 '조용기 목사이다. 다들 욕하지만 나는 조용기 목사를 히스기야 보다 더 사랑한다! 가라!'(라고 성령이 말 하더랍니다.)

그래서 왔다고 나에게 안수하라고 했습니다. '나 죽어도 안수 못한다! 당신에게 안수했다가 벼락맞아 죽을 것이다’라고 거절하는데 (옥한흠이) 꿇어앉고 머리는 내 미는데 어떻합니까? 같이 얼싸 앉고 성령의 능력을 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조용기)

옥한흠이 미국의 이단 릭 워렌에게 안수기도를 받았고, 은밀하게 한국의 이단 조용기에게 찾아가서 안수기도를 받았다는 사실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옥한흠이 영적으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랬으니 성령운동이라는 개념이 그에게는 이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에드워즈를 성령운동했던 사람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대각성 부흥운동’이라는 말도 매우 비성경적인 개념입니다. 알미니안 배경에서 발달된 청교도들의 이상한 신학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각성’이란 사람이 아직 중생되기 전에 자신이 구원되지 못하여 지옥의 형벌로 떨어지게 될 것은 알고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애쓰는 상태를 의미하는 청교도들의 이단사상이 함축된 신학 용어였습니다.

신대륙에 가장 먼저 정착했던 회중주의 청교도들은 회심준비론이라는 이단사상에 완전히 사로잡혀있었던 그룹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만들려면, 먼저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통함과 슬픔을 체험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 일이 율법의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할 때 성령에 의해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청교도들은 “영적 각성이 시작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청교도들의 영적 각성은 구원과 직접 관련이 없었습니다. 단지 죄인이 지옥에 떨어질 자신의 운명에 대한 통렬한 슬픔을 느끼기 시작하고, 또한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청교도들이 중시했던 영적 각성은 비교인들에게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일어났습니다. 신대륙의 청교도들의 교회와 목회는 지금 우리의 상황과 완전히 다릅니다. 그때는 모든 주민들이 자기 동네의 교회에 다 나갔던 시절입니다. 동장이나 면장이 되려면 교회의 출석증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이름뿐인 신자들이 얼마나 많았을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불신자 신자들을 구원받게 만들고자 나타난 것이 율법으로 사람들을 발발 떨게 만든 후 구원(?)을 위한 율법 준수의 의무, 그리고 율법의 저주를 대신 지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사람이 웨신서가 가르치는 행위언약에서 은혜언약으로 이동되어 구원을 누리게 된다고 청교도들은 믿었습니다. 물론 이 사상도 옳은 것은 아닙니다.

청교도들의 회심준비론은 교회가 사실상 그 마을의 모든 주민들의 모임이기도 했던 상태에서 진행되었고, 회심준비론 설교와 목회가 먹히면 교인들이 자기의 구원을 위해 더 힘써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회개하고, 율법준수하고, 심지어 자선 활동에 힘쓰는 모습을 연출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청교도들의 영적 각성이었고, 에드워즈의 대각성 부흥운동이라는 것의 내막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청교도들의 영적 각성 목회는 필연적으로 거짓 성령, 즉 마귀의 거짓 은혜 체험이 나타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영적 각성의 상태에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성경 읽고, 목사와 구원에 대해 상담하고, 죄를 찾아서 회개하고 ... 영원히 이것만 하면 사람은 말라 죽습니다. 실제로 구원이 와야 하고, 구원이 왔다는 것이 느껴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청교도들이 가르친 ‘성령의 회심체험’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각성된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 위해 구원의 공적수단이라고 여겨졌던 예배, 기도, 회개 등에 힘쓰면서 구원을 계속 사모하면, 사람이 예상하지 못하는 어느 순간, 오직 하나님의 주권을 따라 성령의 회심체험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구원되었다는 내면의 (주관적인) 확신으로, 그리고 성령에 의해 벌어지는 외적은 모습, 즉 사람에게서 괴이한 환희나 슬픔, 몸이 축 늘어지면서 말할 수 없는 쾌감을 경험하는 현상, 입신 등의 괴상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옥한흠 목사가 에드워즈에게서 나타난 그런 일들을 성령운동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율법의 저주 선포와 성령의 역사로 영적으로 각성되어 자기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성경을 읽고, 예배에 힘쓰고, 기도하고, 회개하다가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가르침이 있습니까? 구약 유대교 속에 있었던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과정에서 유사한 모습이 일어나기는 했으나, 유대교와 그리스도가 겹치는 시기는 매우 짧았습니다. 또한 청교도들이 말하는 그런 내용도 아니었습니다.

옥한흠 목사가 인정하고 귀한 것으로 성도들에게 말한 성령운동, 대각성 부흥운동이라는 것은 오순절 교회(신사도교회)에서, 또 감리교회 쪽에서 인정하고 좋아하는 내용들입니다. 총신과 합동의 신학이 아니고 합동의 신앙도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 성령운동 개념은 이단사상입니다. 불신자들을 영적으로 각성시켜서 스스로 자기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게 만드는 개념도 이단사상입니다. 신약의 사도들의 사역에서 전혀 유래를 찾을 수가 없고, 성경이 가르치는 신앙을 변질시키는 위험한 내용입니다.

다음에 옥한흠 목사 설교의 나머지 부분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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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