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부탁>
아래 영상 속의 김효남 교수의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정이철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다른 많은 사람들을 위해 목사님께서 방어해 주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보냅니다.

 

정이철 목사 답변>

다음은 보내주신 김효남 교수의 강의를 듣고 녹취한 내용입니다.

“(3:38초부터)개혁주의와 칼빈주의는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더 정확한 용어의 사용일까요? 먼저 우리가 이렇게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칼빈주의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칼빈이라고 하는 16세기 종교개혁자의 사상이라고 우리가 생각하기 쉽지요. 그런데 사실상 칼빈주의라고 말하면서 실질적으로 칼빈이 말하지 않은 내용, 때로는 칼빈과 대조되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면 사실상 우리는 그것을 칼빈주의라고 말하기 어렵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칼빈의 신학에서 개혁주의가 출발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칼빈이 개혁주의 신학이 형성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16세기 종교개혁을 할 때, 개혁주의 사상을 만들고 형성했던 사람들은 칼빈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 외에도 동시대의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는 것이지요.

칼빈 조차도 자신의 특정한 신학 사상을 형성해 나가는데 있어서 그들과 교류하고 교제하고 또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신학을 세워나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칼빈주의라고 하는 말이 가지는 뉘앙스, 곧 칼빈의 신학이다라고 화는 것은 16세기 개혁주의 신학에 있어서는 큰 오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칼빈 외에도 여러 다른 사람들의 신학 사상이 함께 어우러져 16세기, 17세기 개혁주의 사상을 형성하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16세기 후반이나 17세기의 신앙고백서들을 여러분들이 보시잖아요. 그러면 사실 거기에는 칼빈이 언급하지 않았던 내용, 칼빈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사람들의 사상이 함께 들어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우리가 칼빈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어패가 있지요. 왜냐하면 칼빈과 반대되는 내용들, 혹은 칼빈이 말하지 않았던 내용들도 16세기, 17세기의 신앙고백서들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우리가 여기서 분명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칼빈주의라고 하는 사상은 칼빈이라고 하는 한 사람에게 좀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지만, 개혁주의라고 하는 사상은 칼빈을 비롯해서 그 동시대의 칼빈과 비슷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성경의 무오성을 확신하는 여러 개혁자들의 사상이 함께 어우려져 만들어진 사상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개혁주의 신학의 내용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칼빈주의라는 말보다는 개혁주의라는 용어가 그 신학의 성격을 잘 설명해준다라고 설명을 하곤 합니다 (6:20초까지)” (김효남 교수).
 

김효남 교수의 주장의 핵심은 개혁주의는 칼빈 한 사람의 신학이 아니라는 내용입니다. 문자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이 어찌 칼빈 한 사람에 의해 다 만들어진 신학이겠습니까? 그러나 김효남 교수의 주장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김효남 교수가 개혁주의 신학 속에는 칼빈이 말하지 않았고, 또한 칼빈의 사상과 반대되는 내용들까지도 들어와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김효남 교수의 말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16세기 17세기 신앙고백서들 속에 ...) 칼빈이 언급하지 않았던 내용, 칼빈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사람들의 사상이 함께 들어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우리가 칼빈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어패가 있지요. 왜냐하면 칼빈과 반대되는 내용들, 혹은 칼빈이 말하지 않았던 내용들도 16세기, 17세기의 신앙고백서들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김효남 교수).

김효남 교수는 정말 용감합니다. 칼빈의 신학과 반대되는 내용까지도 개혁신학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흔치 않습니다. 김효남 교수처럼 이런 위험한 말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칼빈의 신학에서 벗어난 내용을 주장하면 교계에서, 특히 한국의 총신과 합동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모두 알기 때문입니다.

총신의 교수들 가운데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속으로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대부분의 교수들은 자기 주장이 칼빈의 신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극구 우깁니다. 사실상 칼빈과 다른 내용의 신학을 주장하면서 “이것은 칼빈의 신학을 후대의 유럽의 개신교 신학자들이 더욱 더 세련되게 발전시킨 사례이다”하는 식으로 말합니다.

김효남 교수처럼 노골적으로 칼빈을 짖밟고 뭉개는 사람은 세계에서 거의 찾기 어렵습니다. 김효남 교수는 칼빈의 신학과 다른 내용이 17세기를 대표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속에 기술되어 있다는 것을 지금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김효남 교수의 말을 다시 보세요.

“왜냐하면 칼빈과 반대되는 내용들, 혹은 칼빈이 말하지 않았던 내용들도 16세기, 17세기의 신앙고백서들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김효남 교수).

칼빈의 신학과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이 신앙고백서에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무슨 신앙고백서일까요? 그 대표적인 것은 바로 웨신서(WCF)입니다. 웨신서 속에 죽음과 함께 임시적으로 만들어진 아담이 자기 마음에 기록되어진 십계명을 완전하게 실천함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나님이 정하셨다는 행위언약 신학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바로 그 내용에서 심각한 이단사상인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회심준비론 교리들이 태동되었습니다. 칭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성경과 다른 칭의론을 주장하면 이단입니다. 능동적 순종 교리를 이미 돌트 신조가 이단으로 정죄하고 그 중심 인물들을 사형, 재산몰수에 처했습니다. 능동적 순종과 동일한 내용을 주장했던 알미니안들을 소시누스주의, 즉 그리스도의 인성만 믿는 기독교 석가모니주의라고 정죄했습니다. 이단을 이단이라고 말하지 못하면 성경의 기독교 신앙이 무너집니다. 

우리는 개혁신학의 모든 내용을 칼빈이 다 완성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칼빈이 말하지 않았을지라도 칼빈의 신학에서 벗어나거나 대립되는 내용을 개혁신학이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칼빈이 말하지 않은 것이 개혁신학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요?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칼빈은 현대의 방언의 은사에 대해 고민한 적도 없고 특별하게 연구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에서 현대의 방언은 성령의 은사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 원리는 무엇일까요? <기독교강요> 등에서 나타나는 칼빈의 신학의 구도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지상 교회를 설립한 사도들 시대에 역사했던 계시적인 은사들이 교회설립 이후 종결되어 사라졌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쳤습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이후부터 종교개혁 시대, 그리고 그 이후 시대의 정통교회에서는 방언이 나타나지 않았고, 아무도 방언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방언의 은사는 19세기 말 미국에서 대량으로 출현한 종말 부흥주의 이단들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괜히 칼빈을 존경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신학이 늘 성경에 맞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입니다. 칼빈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은 내용일지라도 이미 칼빈이 세운 신학의 구도 안에서 그 새롭게 출현하는 이슈의 성경적 타당성과 신학적 진위성이 결정됩니다. 그 원리에 의해 칼빈이 다루지 않은 것들을 계속 정리해 나가는 칼빈주의-개혁주의 신학이 형성되고 발전되었습니다.

김효남 교수는 칼빈의 신학과 반대되는 내용까지도 개혁주의 신학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칼빈이 죽은 후에, 또는 칼빈과 동시대의 다른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했던 내용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무나, 다수가 말하고 가르쳤으면 개혁주의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루터와 칼빈 사이의 타협할 수 없는 다른 내용들로 인해 일찌감치 루터파와 칼빈파로 갈라졌습니다. 칼빈주의라는 말은 신학적 주도권을 빼앗겨 화가 난 루터파들에 의해 생겨난 경멸적인 용어였습니다.

칼빈 사후에 종교개혁 신학을 발전시켰던 유럽의 개신교 신학자들이 이단사상에 오염됨으로 칼빈의 신학과 종교개혁 신앙이 왜곡되어 버렸다고 말해야 마땅합니다. 칼빈 사후 칼빈의 종교개혁 정신과 신학을 계승해야 했던 유럽의 개신교 신학자들을 공격한 이단사상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스콜라주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학하는 방식에 관계되는 용어입니다. 종교개혁 이전 로마교회의 신학 방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을 기반으로 하는 스콜라주의였습니다. 스콜라주의의 핵심은 이성, 논리, 유추라는 단어들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단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 지나치지만, 중세의 로마교회의 이단성과 깊은 연관이 있으므로 가볍게 여길 것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칼빈과 루터는 로마교회의 스콜라주의를 완전히 배격했습니다. 오직 성경과 믿음으로 신학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칼빈이 죽을 무렵부터 다시 영국의 옥스퍼드와 유럽의 다른 대학들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부흥하였습니다. 칼빈 이후의 신학자들은 모두 옥스퍼드 등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배우면서 학문하는 방법을 익힌 사람들이었습니다.

칼빈의 종교개혁은 로마교회의 스콜라주의 신학을 배격하고 오직 성경, 오직 믿음으로 신학하는 개혁운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칼빈 이후의 개신교 신학자들은 이전의 로마교회의 신학 방식, 즉 (개신교) 스콜라주의 방식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설명하도록 훈련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대학에 다닐 때 그 사상이 학문의 방식으로 유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로마교회의 이단사상을 칼빈이 종교개혁으로 물리치면서 다시 신앙과 교회를 성경 위에 세웠습니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스콜라주의 신학(로마교회)을 오직 믿음과 성경에 근거하는 신학(종교개혁)으로 이긴 것입니다. 그러나 칼빈이 죽은 후 종교개혁 신학이 교회들 속으로 자리잡게 만들었던 유럽의 개신교 신학자들은 로마교회의 이단적인 신학 방식(스콜라신학)으로 다시 회귀했습니다.

그래서 칼빈이 죽은 후에 칼빈의 신학과 완전히 다른 내용의 신학이 개혁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16, 17세기의 신앙고백서들이 만들어 질 때는 다시 스콜라주의 신학 방식이 개신교 신학자들에게 수용되어 극에 달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속에 칼빈에게서 찾을 수 없는 행위언약 신학 같은 것이 들어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알미니안 이단사상이 칼빈 이후의 신학자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알미니우스는 죽은 칼빈의 근처에서 머물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칼빈은 자신이 세운 신학교를 베자라는 어중간한 사람에게 맡기고 떠났습니다. 베자가 맡아 운영했던 그 학교에 알미니우스가 찾아가서 1년 동안 베자와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였습니다. 베자가 알미니우스에 대해 불편을 느꼈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베자는 알미니우스가 조국 네덜란드에 돌아갈 때, 아주 훌륭한 신학자이니 교수로 채용하라는 내용의 추천서를 써주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자리잡은 알미니우스의 신학은 서서히 큰 세력을 형성하였습니다. 칼빈의 종교개혁 교회의 신앙을 위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종교개혁 교회들은 도르트 총회(1618-1619)를 개최하여 알미니안 신학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도르트 신조>를 발표하였습니다. 그 중심 인물들을 사형, 재산몰수 등의 처벌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넬덜란드에서 철퇴를 맞았던 알미니안 신학이 가까운 영국의 청교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은 칼빈의 신학과 다른 뭔가를 더 좋아하고 신봉하면서 개혁운동을 추진했습니다.

지금까지 영국의 청교도들이 칼빈의 신학보다 더 좋아했던 ‘그 무엇’의 정체가 쉽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최근의 연구를 통해 그것은 바로 알미니안 신학이었고, <도르트신조>를 통해 화란의 칼빈주의 선조들이 정죄한 이단사상이 청교도들에게서 수용되어 인간의 의지와 행위를 강조하는 청교도운동의 경건주의가 발전되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김효남 교수가 칼빈이 말하지 않았으나, 또는 칼빈의 신학과 반대되는 내용이 개혁주의 신학이 되었다고 주장은 바로 그것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들을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은 아담을 영생없이 창조하셨고, 아담이 스스로 노력하여 영생을 얻도록 정하신 행위언약을 선포하셨다

2) 하나님은 아담에게 영생을 주는 십계명을 그의 마음에 기록하여 창조하셨다.

3) 아담은 의인도 아니고 죄인도 아닌 중간상태로 창조되었다.

4) 율법은 태초부터 있었고 사망과 구원과 영원한 정죄를 결정하는 궁극적 기준은 율법이었다.

5) 그리스도께서 홀로 십계명 율법을 완전하게 준수하시어 율법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다.

6) 율법준수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신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행위언약보다 더 쉬운 구원공식, 즉 그리스도를 믿으면 율법준수를 완전하게 한 것으로 간주하고 칭의를 주시는 은혜언약을 제안하시어 인정 받으셨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게 하셨다.

7) 그리스도의 구원 방식의 핵심은 율법준수를 통해 영생의 자격, 의를 얻으셨다는 것이다.

8)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는 완전한 영생을 주지 못한다. 구원을 위한 소극적 의, 즉 단지 지옥의 형벌에서 면제되게할 뿐이다.

9)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가 전가되지 않으면 타락한 아담이 그리스도를 믿어도 영생을 얻지 못했다.

10) 행위언약 상태의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먼저 율법의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해야 한다. 그래서 덜 죽은 영혼(병든 영혼)을 가지고 있는 죄인이 스스로 자기의 비참한 상태를 깨닫고 율법준수를 완전하게 대신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게 만드는 회심준비론 목회만이 영혼들을 구원한다. 
 

김효남 교수가 총신과 합동에서 목숨 걸고 전파하는 이런 내용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또한 기독교 신앙을 왜곡한다는 면에서 이단사상입니다. 김효남 교수는 이런 이단사상을 칼빈이 아닌 다른 학자들에게서 발전된 개혁주의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와 성경을 왜곡하는 이런 이단사상을 칼빈 외의 다른 개신교 신학자들이 발전시킨 개혁주의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효남 교수는 칼빈주의라는 말보다 개혁주의라는 말이 더 낫다고 합니다.

김효남 교수는 왜 이럴까요? 이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기 미국의 칼빈신학교에 와서 그것을 가르치는 리처드 멀러, 그리고 그 옆의 청교도신학교에서 조엘 비키를 통해 그것을 배우고 한국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리차드 멀러는 자유주의 신학을 가르치는 유니온 신학교와 듀크에서 신학을 배웠고, 조엘 비키는 칼빈보다는 베자와 알미니안 신학의 영향을 더 받은 윌리엄 퍼킨스와 그의 후배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의 신학을 복원하는데 자기 목숨을 바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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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남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 북을 통해 로마교회의 영세를 우리의 세례와 같은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유아세례를 시행하는 합동의 신학적 입장을 비판하는 내용.

 

김효남 교수는 로마교회의 영세를 우리 합동이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어린이 유아세례를 시행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율법에서 칭의가 나온다는 신학인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지고 있고, 구원이 먼저 율법으로 기경된 마음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뿌려짐으로 일어난다는 탈아브라함 신앙 노선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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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