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대들에게 베포된 2023년 합동 총회 회의록 401 페이를 어떤 분이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셨다. 지난 수년 동안 뜨겁게 논쟁되어진 능동적 순종 교리에 대한 신학부 보고문이 나온 부분이었다. 다음은 401 페이지를 그대로 녹취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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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교리 관련의 건 및 이대위 능동순종 이첩의 건

그리스도의 순종 교리를 말할 때, 유일 중보자로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범죄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대속적 죽음이며, 그리스도의 전 생애 걸친 고난과 율법 아래 오심과 순종의 절정이요, 성부 하나님의 명령과 위착에 대한 최고의 순종이다. 그러나 순종 교리를 전개할 때 그리스도의 순종을 십자가의 죽음에만 국한 시켜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리스도 지상 사역 전 생애에 걸친 순종에서 다루어야 한다.

흔히 십자가의 순종을 수동적 순종으로, 또 십자가 이전의 율법을 준행하신 생애를 능동적 순종으로 구분하는 것은 그의 전체 순종을 생애의 특정 시기에 따라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순종으로 과도하게 분할시키는 것으로 바르지 않다.

그러므로 개혁신학이 그리스도의 순종을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이라는 두 방면의 순종있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의 순종이 가진 두 방면을 가리키는 것뿐이지, 두 종류의 순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의 절정인 십자가의 죽음은 수동적 순종이면서 또한 능동적 순종의 최고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순종교리에서 능동적 순종은 그 본래의 의미대로 오해 없이 바르게 사용된다면 명백한 개혁주의 전통의 교리이다. 목회현장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교리를 교훈할 때 주의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그리스도의 순종을 설명할 때 그리스도의 전 생애에 걸친 완전한 전체 순종을 말해야 한다.

2)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생애 전체의 순종의 절정이며 십자가의 속량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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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전 생애의 순종을 강조하고,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을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니 매우 좋아 보이는 보고서이다. 특히 “십자가의 속량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말하니, 더욱 더 그럴싸한 보고서이다.

그러나 능동적 순종의 핵심적인 이단사상을 건드리지 않고 보존하는 매우 모호한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그리스도의 전 생애의 순종’ 또는 ‘십자가의 속량 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표현으로 우리의 눈을 마비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여전히 그리스도가 평생에 걸쳐서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면, 제 아무리 십자가에서 피를 많이 흘리고 죽으셨다고 해도 우리는 완전한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능동적 순종 교리의 이단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누가 이 보고서 작성자에게 “만일 예수님이 태어난 지 3일 만에 우리 대신 죽으셨다면 우리는 구원을 못 받았겠네요?”라고 질문해 보기를 바란다. 그러면 이 보고서 작성자는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예수님이 오래 사시면서 율법을 지키시어 우리의 영생의 자격을 만드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단성이다.

능동적 순종 교리를 반대하려면, 예수님이 태어난지 하루 만에, 혹은 3일 후에, 혹은 석달 후에, 혹은 3년 후에, 혹은 30년 후에 ... 언제 대속의 죽음을 당하셔도 우리는 넉넉하게 구원을 받는다는 확신있는 신앙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성경적인 신앙이고, 하나님의 성육신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신앙이다.

나의 이 말이 틀렸으면 누구든지 자신있게 나서서 나를 비판하기 바란다. 이 말이 틀렸으면, 나는 목회를 그만하고, 바른믿음도 폐쇄할 수 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율법준수와 영생을 얻는 것 사이에 관련성이 0.0000000도 없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청교도들과 현대의 학자들은 그리스도가 태어나고 하루 후에 우리를 대신하여 죽었다면 우리에게 영생이 없다고 본다. 그리스도께서 아담에게 없었던 영생을 대신 만들어 낼 노력을 하실 시간을 지상에서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보고서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얻으신 영생의 자격이 십자가를 타고 믿는 우리에게 전가된다는 김효남 교수의 논리를 그대로 추종하고 있다. 결국 영생은 율법준수에서 나온다는 거짓 신앙(이단사상)을 한치도 바꾸지 않으면서 우리 합동의 영혼들에게 거짓 신학을 강요하는 악한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 작성자는 여전히 아담이 중립적으로, 임시적으로 창조되었고, 창조 때 자기 마음에 기록된 율법을 스스로 완전하게 지켜서 영생을 얻어야 할 사람으로 창조되었다고 보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아담과 우리의 구원자는 반드시 아담이 지키지 못한 율법을 지켜야한다. 그 사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리스도의 전 생애의 순종', '십자가의 속량 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 ... 이런 말을 쓰고 있다. 

여전히 영생이 율법준수에서 나온다는 거짓 신학, 즉 영생을 위해서는 인간 자신 또는 그리스도에 의해 '율법의 완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 율법주의 신학을 그대로 우리에게 강요하는 나쁜 보고서이다. 그리스도의 평생의 율법준수의 공로가 믿는 우리에게 십자가를 타고 들어오므로 둘 사이에는 구분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의 전 생애에 걸친 완전한 전체 순종”

“죽음은 생애 전체의 순종의 절정이며 십자가의 속량만이 우리를 구원”

이런 말에 우리는 속지 않아야 한다. 이 보고를 우리가 수용할 수 있으려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구원 사례와 모든 구약 성경의 인물들의 구원 사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하나님이 구원을 주시는 것과 율법준수는 0.0000001도 관련이 없다는 내용이 분명하게 나와야만 한다. 율법은 하나님이 자기 자신의 희생으로 구원을 주신 사람들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하 하나님의 채찍일 뿐이라는 내용이 명확하게 나와야 우리가 이 보고서를 받을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켰다는 저들의 주장 그 자체를 더럽게 여기고 경멸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켰다고 해 보자.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려면 그리스도 자신에게 간음하는 성향이 있어야만 한다. 간음하려는 성향 자체가 없으면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근본적으로 간음이 뭔지 알지 못하고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에게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이 무슨 의미인가? 군대에 입대하지 않고 면제된 사람에게 군법을 지키라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죄인이어야 율법을 지키라는 범주에 해당되는 것이다. 

사람에게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곧 사람에게는 간음하려는 성향이 반드시 있으므로 스스로 싸워서 자신을 지키라는 것이다. 간음 성향이 없으면 간음하지 말라는 그 율법은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에게 군법과 같을 것일 뿐이다. 

그리스도는 간음하려는 죄의 성향을 타고 나셨으나 자신의 의지와 결단으로 일체 간음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우리의 의가 되셨는가? 간음이 뭔지 알고, 그것을 눈으로 마음으로 느끼고 접하였으나, 실제로 행동하지 않았다고 그 율법을 완전히 지키는 것인가? 이미 마음으로 느끼는 순간 간음하는 죄에 빠졌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뭔가?

하나님의 인격을 가지고 오신 거룩하고 의로우신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율법이 지시하는 모든 자세와 정신과 요구가 이루어진 완전한 하나님-사람이셨고, 언제나 거룩하고 의로우셨을 뿐이다. 결코 간음하려는 자신의 욕망과 싸워서 이기신 분이 아니다. 간음의 욕구를 느끼면서 스스로 절제하고 마음을 다져 이겨내신 분이라면 기독교의 그리스도가 아니고 기독교의 석가모니였다.

1)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영생의 공로를 얻었다는 믿음, 2)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는 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라는 믿음, 3) 아담이 그것을 못했으니 그리스도가 대신 했다는 믿음 ... 모두 악하고 가증한 거짓 믿음이다. 제 아무리 “그리스도의 전 생애에 걸친 완전한 전체 순종”이라는 말로 본질을 왜곡해도 이 보고서는 사람이나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야 영생이 주어진다는 거짓된 신학, 즉 이단사상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보고서를 멸시하고 천시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우리를 속이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순종교리에서 능동적 순종은 그 본래의 의미대로 오해 없이 바르게 사용된다면 명백한 개혁주의 전통의 교리이다".

여전히 율법준수가 영생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거짓 사상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것이 능동적 순종 교리의 핵심인데,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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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