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시누스에게 표현이 조금 다른 형태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개념이 있었다는 것이 그의 <대요리문답> 135번에서도 확인된다.

“135 Q: Why is it necessary that the satisfaction and righteousness of Christ be credited to us in order for us to be righteous before God?

A: Because God, who is always just and true, wants to receive us into his covenant of grace in such a way that he does nothing against the covenant established at creation, that is, he does not treat us as just nor give us eternal life unless his covenant law is completely fulfilled, either by ourselves, or, since that is impossible, by someone in our place” (Ursinus 2009).

(135 Q: 우리가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의 만족과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왜냐하면 언제나 진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세우신 언약 (자연 언약 또는 창조 언약)을 훼손하지 않으시는 은혜 언약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의 율법이 우리 자신들에 의해 성취되거나, 또는 그것이 불가능하니 우리를 대신하는 다른 누군가에 완전하게 성취되기 전에는 우리를 위롭게 여기지도 않으시고 또한 영생을 주시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대요리문답 135번에서 우르시누스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후대의 학자들과 동일한 내용의 칭의론을 전개했다. 우르시누스는 하나님께서 창조 때 인간과 맺으신 언약이 영생을 위한 영원한 공식이라고 보았다. 아담이 그 언약에 대해 실패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했으므로 우리 자신이 그 언약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했다. 만일 그것이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이라면 우리를 대신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언약을 완성해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완전한 생명을 주실 수 있었다고 우르시누스는 보았다.

대요리문답 135번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연관된 우르시누스의 신학의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1) 율법에게 영생을 주는 능력이 있다는 이해, 2) 아담이 완전하지 못한 생명으로 창조되었다는 이해, 3) 영원한 생명을 주는 율법이 자연법으로 인간에게 주어졌다는 사상, 4) 행위 언약 또는 자연 언약이 영생의 원칙이므로 그리스도께서 능동적 순종으로 그 언약의 요구를 대신 이행하신 후, 행위 언약 보다 더 쉬운 구원 공식으로서 은혜 언약 만드셨고, 그것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주장이다.

우르시누스의 하나님이 태초에 자연을 통해 인간과 맺으신 자연 언약 또는 행위 언약 개념은 성경과 맞지 않다. 우르시누스의 주장이 사실이면, 하나님이 아담이 율법의 시험을 통과하여 영생을 얻기 전에 아담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31)라고 이치에 맞지 않는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 똑같은 불합리함이 창세기 1장 26절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에서도 나타난다. 자연 언약의 율법의 요구를 완전하게 이루지 못한 불완전한 생명의 상태인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고 관리하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자기의 형상대로, 그리고 죽음이 없는 몸으로 창조하셨으므로 아담에게 자기를 대신하여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사명과 권세을 주셨다고 보아야 옳다 (Suh 2018d, 99). 그러나 후에 아담은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모든 것을 박탈당하였다.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자기 백성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자연 언약 (또는 행위 언약), 그리고 율법의 요구를 대신 성취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주신다는 은혜 언약 이론도 성경과 맞지 않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이 율법으로 자기 백성을 생산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암시가 없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1,500년전 사람 아브라함도 구원을 위해 율법 준수나 어떤 행위의 공로를 요구받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Faith was accounted to Abraham for righteousness" (롬 4:9, NKJV).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우르시누스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현대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행위 언약-은혜 언약 도식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을 설명하지 못한다 (렘 31:31; 눅 22:20). 새 언약은 그리스도께서 능동적 순종으로 행위 언약을 만족시키신 후 더 쉬운 구원 공식으로 만드신 은혜 언약과 같은 내용이 아니다. 새 언약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로 첫 언약을 파괴한 아담의 범죄를 무효로 만들어 다시 그 언약을 복원하신 것이다 (Suh 2018d, 155). 칼빈도 성경의 언약들은 여러 종류의 언약으로 보지 않았다. 칼빈은 성경의 언약들을 단 하나의 언약으로 보았다 (Calvin 1998, 2.10.2).

아담에게 영생을 주는 율법이 창조 때 자연을 통해 아담에게 주어졌다는 우르시누스의 주장도 매우 위험한 내용이다. 율법은 하나님이 은혜로 구원하신 자기 백성의 삶의 온전함을 위해 주신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출 19:1~20:26). 성경은 율법으로부터 의를 얻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헛되다고 말한다 : "I do not set aside the grace of God; for if righteousness comes through the law, then Christ died in vain" ( 갈 2:21, NKJV).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우르시누스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아담에게 자연을 통해 주어진 율법이 훗날 시내산에서 돌판에 기록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다고 주장한다 (Kim 2022; Pronk 1999, 258). 죄를 지적하는 율법이 창조 때 아담에게 자연을 통해 주어졌다는 것은 아담의 마음 속에 이미 경계해야 할 죄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담을 의로운 자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죄를 가진 자로 창조하신 것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죄의 조성자가 되시는 것이다.

 

 

영생을 주는 하나님의 율법이 창조 때 인간에게 자연법으로 주어졌다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지지하는 학자들의 이론에 대해 서철원 박사는 다음과 같이 반박하였다: “Since all the laws that God gave his people to follow are naturally formed, God loses his place in Christianity and the world. If the Ten Commandments and laws are natural law, then we have no responsibility to God if we do not keep them” (Suh 2023).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지키라고 주신 모든 법들이 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되므로 하나님은 기독교와 세계에서 설 자리를 잃습니다. 십계명과 율법들이 자연법이라면,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해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어떤 책임은 없습니다.)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율법이 창조와 함께 자연법의 형태로 왔다는 우르시누스의 신학은 율법에 대한 칼빈의 신학과도 맞지 않다. 칼빈은 자연법을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에게도 있는 선한 양심 정도로 설명하였다. 자연법이 인간에게 구원을 주거나, 영적인 불행한 상태를 알고 하나님을 찾게하는 기능이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Calvin 1998, 2.2.22).

우르시누스가 주장한 구원의 영원한 원칙으로서의 the covenant of nature (또는 the covenant of works), 그리고 그 원칙을 만족시킨 그리스도에 의해 만들어진 은혜 언약 개념은 나중에 등장한 알미니안들의 핵심적인 사상이었다. 나중에 The Cannons of Dort (1619)에 의해 정죄된 네덜란드 알미니안들도 the covemamt of workthe covenant of grace을 가르쳤다 (Bouwman 1998, 44-45, 54-55).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내가 행위 언약의 성경적 타당성을 연구할 때 더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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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sinus, Zacharias. 2009. Large and Small Catechisms with the Heidelberg Catechism. Translated by Fred H. Klooster and John Medendorp. edited by The riddlebolog. PDF. http://kimriddlebarger.squarespace.com/the-latest-post/2009/11/23/ursinus-large-and-small-catechisms-together-with-the-heidelb.html.

Suh, Chul-Won. 2018d. Anthropologia. Seoul: Qumran.

Calvin, John. 1998. Institutes of Christian Religion. Edited by John T. McNeill. Translated by Ford L. Battles. Albany: Books for The Ages. https://media.sabda.org/alkitab-7/LIBRARY/CALVIN/CAL_BAT3.PDF.

Suh, Chul-Won. 2023. "If the Ten Commandments are natural law, then God has no role in creation." Good-Faith. 28th April 2023. https://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2873

Bouwman, Clarence. 1998. Notes on the Canons of Dort. Armadale: The League of the Free Reformed Women’s Bible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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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