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에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라는 연구자들에게 제공하는 많은 자료들을 수록하고 있는 책을 펴내신 분이 한국에 계신다. 그 책의 85 페이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아담은 인류의 대표자로서 책임을 어기고 불순종하였다. 아담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연 계시와 함께 주어졌다.” (84 페이지).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실 때, 자연 안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이 주어졌다는 의미이다. 자연계시와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은 서로 어울리는 내용이 아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은 특별계시이다. 구름, 산, 냇물, 바다, 나무 등의 자연을 통해 인간에게 전해지는 하나님에 대한 흐릿하고 조금 막연한 지식과 정보들(자연계시)이 아니다.

“아담아! 네가 나를 경배하지 않고 네 멋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나님)

하나님이 아담에게 이런 내용을 말하셨다면, 그것은 특별계시이다. 결코 자연을 통해 인간에게 전달되어지는 자연계시일 수가 없다. 인간의 생사를 가르는 이렇게 중요하고 구체적인 하나님의 메시지가 대체 자연의 어느 구석에서 나오는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라는 책을 쓴 이 교수께서 하나님의 어떤 특별한 말씀이 태초에 자연으로부터 , 자연과 함께 아담에게 전달되었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보자.

“세상의 창조 때부터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만물을 통해 분명히 드러나 알게 하셨다(롬 1:20). ‘저는 율법을 들은 적이 없나이다’라고 그 어떤 사람도 핑계하지 못하도록 양심에다가 일반적인 계시로 새겨놓았다(롬 2:15). 모든 인류는 동일한 한 가지 법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다. 양심에 새겨진 법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진리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 하지만, 제대로 실행이 되지 않고 있기에 ‘살인하지 말라는 말라’는 여섯 번째 계명이 특별계시로 주어진 것이다.” (85 페이지).

이 교수는 (하나의 예로서) 태초에 아담에게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법이 자연을 통해 아담에게 주어졌다고 한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 외에 많은 다른 법들이 자연을 통해 아담에게 주어졌다는 뜻이다. 

이 교수의 이런 주장 속에는 맞는 내용과 틀린 내용이 함께 들어있다.

첫째, 하나님이 태초에 인간에게 양심의 법을 주셨다는 주장은 맞는 내용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양심이라는 법이 있다. 양심으로 인해 사람은 중요한 일들에 대해 어느 정도 옳고 그른 것을 분간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는 그들이 마음 속의 양심이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율법의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 마음에 새긴 율법” (롬 2:14). 그러나 사도가 양심이 정확하게 율법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인간이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바르게 경배하여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는 전혀 말하지 않았다.

둘째, 인간의 마음 속의 양심의 법이 자연과 함께, 자연을 통해 주어졌다는 이 교수의 주장은 틀린 내용이다. 인간 속에 있는 양심의 법은 자연을 통해 주어진 것이 아니고, 인간 속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으므로 모든 인간에게는 공통적으로 양심의 법이 존재한다. 타락과 함께 인간 속의 하나님의 형상이 매우 변질되었으므로, 이제는 사람마다 양심의 법의 수준과 내용이 다른 실정이다. 훗날에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과 동일한 기능을 하는 양심의 법이 태초에 자연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졌다는 이 교수의 주장은 성경적 신앙을 왜곡할 소지가 다분하다.

셋째,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인류의 보편 진리가 인간 속에 있는 양심의 법의 증거라고 이 교수의 주장은 매우 그릇되었다. 이 교수의 말은 살인이 나쁜 것이라고 가르치는 하나님의 진리가 태초에 자연을 통해 아담에게 주어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진리가 인간들 속에서 잘 지켜지지 않았으므로, 나중에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동일한 내용을 특별계시로 주시어 율법의 돌판에 기록하셨다고 이 교수는 설명하였다.

매우 그릇된 내용이고 성경적 신앙을 흔드는 나쁜 이론이다. 타락 이전의 아담에게는 살인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죄는 존재하지 않았다. 간음이라는 구체적인 죄, 우상숭배라는 죄, 도둑질이라는 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담의 마음 속에 전혀 있지 않았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이 태초에, 아직 타락하지 않은 아담에게 자연을 통해 전해질 필요가 왜 있었다는 것인가?

살인, 간음, 도둑질, 우상숭배 ... 이런 구체적인 죄는 아담이 하나님께 반역하는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고, 영원히 죄와 사단에게 팔리게 됨으로 따라서 나타난 구체적인 죄들이다. 타락한 후에도 비록 변질되었으나, 여전히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해 대부분의 인간들이 이런 것들이 죄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타락하기 전의 인간에게 자연을 통해 이런 죄들을 범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가 있었다는 주장은 전적으로 그릇되었다.

대체 이 교수는 왜 이런 이상한 주장을 하는 것일까? 종교개혁 신앙을 망치는데 크게 기여한 웨신(WCF 19:1)의 아담과 하나님의 행위언약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옹호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웨신의 행위언약은 아담이 하나님을 떠나면 잃어버릴 수 있는 완전한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창조되었음을 부정한다. 대신에 완전한 생명을 얻기 위해 발전되고 격상되어야 할 임시적인 존재로 아담이 창조되었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아담이 완전한 생명을 얻기 위해 나쁜 일들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생명을 위한 조건적 명령이 태초부터 아담에게 자연을 통해 주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웨신의 행위언약에 충성하는 학자들은 율법이 인간에게 완전한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담에게는 그 율법이 태초에 자연을 통해 주어졌다고 한다. 이는 기독교의 율법이 자연법으로서 인류에게 먼저 주어졌고, 나중에 그 내용이 시내산에서 십계명으로 돌판에 기록되어졌다고 한다. 아담이 자연을 통해 주어진 율법을 지키지 못하여 완전한 생명을 얻지 못했으니 그리스도께서 나중에 십계명으로 기록되어진 그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얻으신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여 우리가 의인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의 율법이 원래 자연법으로 만인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것이라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것을 위반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벌과 저주를 받아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으로 주신 것도 아닌데, 왜 인간이 율법에 대해 부들부들 떨어야 하는가?
 

 

웨신(19:1)이 가르치는 아담과 하나님의 행위언약 사상은 이와 같이 심각하게 기독교를 왜곡한다. 그런데 부흥과 개혁사의 백금산 목사는 쉬지 않고 이런 잘못된 신학을 한국 교회에 전파함으로 한국 교회가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고 있다. 장차 하나님이 내리실 진노의 심판을 어찌감당하려고 백금산 목사가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 백금산 목사는 최근에 또 아담과 하나님의 행위언약을 옹호하는 그릇된 외국인 교수의 책을 번역하여 출판하였다. 한국 사람들은 이 외국인 교수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자꾸 이런 식으로 홍보하니 보게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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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