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14-15에서 바울이 가정법을 써서 ‘방언으로 기도하다’라는 말을 쓴 것은 자신이 방언으로 기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이창모)나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김동수 교수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이것은 헬라어의 기초를 전혀 모르고 하는 주장이다. 헬라어에서 가정법 구문이 꼭 현실과 반대되는 상상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본문에서 현재 가정법으로 쓰인 구문인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은 ‘내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혹은 기도할 때 마다]’라는 뜻이다.(Gordon D. Fee,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rev. ed., 742).만약 본문에서 이 사람의 주장대로 가정법 구문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에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4-11절에서 설명한 성령의 은사들을 곧바로 12절-27절에서 몸의 지체 비유로 다시 설명한다. 바울이 몸의 지체 비유를 동원하는 까닭은 영적으로 어린아이 같은 고린도 교회의 이해력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바울이 몸의 지체 비유를 통해 성령의 은사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2-13).몸은 하나지만 몸의 지체들은 눈, 코, 입, 손, 발 등 다양하다. 그런데 몸의 다양한 지체들은 다 한 몸에 붙어 있다. 이렇게 몸과 지체
(제목 입력 공간의 한계로 이 글의 제목에서 '김동수 교수'라고 호칭하지 못했음을 독자들께서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른믿음 편집자) 오늘 전개되는 현대 교회의 변태적인 거짓 방언에 대한 토론에 참여하기 위해 먼저 독자들은 나와 김동수 교수가 주장한 다음의 내용을 먼저 파악하기 바란다. “고전 14:2,4에서 방언이 하나님께 말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바울의 주장이 아니라 고린도교회의 주장을 인용한 것이다”(이창모)."이러한 주장은 바울이 전혀 말하지도 않은 방언에 대한 정의(외국어를 말하는 능력)에서 출발해서 이런 엉뚱한 해석을 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이 자신의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반대하는 고린도교회의 주장을 인용한 것이라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기록 당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4-7).바울은 4-6절에서 다양한 은사와 직임에 관여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바울이 여기서 삼위 하나님을 차례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고린도 교회에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르치려는 의도라기보다는 중복을 피하려는 문학적 습관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바울이 여기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이유는 7절에서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함으로써, 성령이 “그의 뜻대로”(11절) 교회에 은사를 주시는 목적이 교회의 유익에 있음을
(기사의 제목에서 '김동수 교수', '김동수 목사' 등의 존칭이 누락된 것은 김동수 교수를 무시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제목이 짧아야만 화면에 다 나타나는 공간의 문제로 인한 상황입니다. 바른믿음은 바른신앙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상대가 누구일지라도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하는 것을 당연시하나, 그 방법은 언제나 정당하고 그리스도인 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어긋나는 글을 발견하면 언제든지 지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고전 14장에서 참 방언과 거짓 방언을 구별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글로사’(방언)의 복수형은 성령의 은사로서의 참 방언을, 단수형은 거짓 방언을 가리키는 것으로 양자를 구별하고 있다”(이창모 목사).한국의 대표적인 거짓 방언 중독자이며 옹호자인 김동수
평택대학교 교수인 김동수 목사는 다음과 같이 옹알거리는 거짓 방언을 옹호했다.“바울이 말한 방언은 방언 기도가 아니라고? 이들의 주장의 요체는 바울이 소개한 방언은 기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방금 앞에서 말한 대로 바울은 분명히 방언이 기도라고 말했다. 그는 “기도하다”라는 용어까지 사용한다(14:15).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근거로 바울이 말한 방언이 기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가?“(김동수)“바울은 분명히 방언이 기도라고 말했다. 그는 ‘기도하다’라는 용어까지 사용한다”(14:15)는 김동수 교수의 주장은 그가 과연 정상정인 신학자인가를 의심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이 주장은 전후문맥을 무시하고, 또한 고린도전서 14장 15절이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고린도 교회의 상황, 즉 어린아이 수준의 고린
현대의 옹알거리는 거짓방언 옹호자(이하 ‘방옹자’)들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집중적으로 기술한 그 문제의 방언이 정상적인 기독교의 방언이었으나 신자들에 의해 남용되고 오용됨으로 인해 문제를 야기했을 뿐이라고 한다. 바울은 그 당시의 고린도 교회를 더럽혔던 그 방언을 성령으로부터 나타난 기독교의 정상적인 은사였다고 보았고, 또한 바울이 적극적으로 그 방언을 권장했다고 주장한다.만약 극렬한 방옹자들과 많은 현대 교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린도 교회의 그 방언이 성령이 주시는 기독교의 방언이었다면 아마도 바울은 다른 문제들과 비슷한 비중을 할애하여 방언 문제를 다루었거나 어쩌면 더 가볍게 다루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울이 고전 14장에서 이야기하는 그 방언이 정상적인 성령의 은사였다면 그것
추천의 글 발행인 서문 저자 서문 프롤로그 1부 / 사도행전의 방언 1장 오순절 예루살렘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재구성한 오순절 이야기: 예루살렘 국제공항에서 오순절 날 예수살렘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방언은 성령세례의 증거인가 성령이 임하실 때 방언 현상이 왜 불규칙적으로 일어났는가 예루살렘 초대 교회는 방언으로 기독한 적이 있었는가 2부 / 고린도전서의 방언 1장 고린도 교회의 방언에 대한 현대 교회의 의견들 2장 고린도 교회의 방언의 불편한 진실 찾기 당시 고린도 교회가 있었던 고린도 시는 어떠했는가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방옹자들이 내세우는 방언 인증 성경 본문들 지금까지 해 온 방언 논쟁의 문제점
김동수 목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옹앙거리는 소리현상을 방언이라고 옹호하였다. “바울과 누가가 방언에 대해서 말할 때 공통점은 이것은 인간의 능력이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행 2:4; 고전 12:7) 된 것이라는 것이다. 또 이것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 말을 배우지 않은 것이었기에 이것이 외국어이든, 실제 언어가 아니든 자신은 그 말의 뜻을 모르고 했다는 것이다.그런데 바울이 다른 사람보다 더 방언을 많이 했다는 것을(고전 14:18) 바울이 외국어 구사 능력이 있어서 외국어를 더 많이 했다고 이해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또 바울은 우리가 성령의 은사로 부르는 것을 ‘성령의 나타남’(고전 12:7)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피아노를 잘 치거나, 운동을 잘 하거나 하는 은사와 같
방옹자(거짓방언을 옹호하는 자)들은 방언기도가 초대 교회를 부흥시킨 원동력이었다고 믿는다.1) 따라서 이들은 방언이 예루살렘 초대 교회 안에 풍성하게 있었으며, 그 후에도 부흥하는 교회 안에서 끊임없이 나타났다고 주장한다.2) 이들은 방언기도가 있는 곳에서는 교회가 부흥하고, 방언기도를 반대하거나 없는 곳에서는 교회가 쇠퇴한다고 주장하면서, 더 나아가 방언을 반대하는 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라고 위협까지 하고 있다.3)방옹자들의 이런 주장은 사실일까? 방언 현상이 기록된 있었던 사도행전의 본문들을 직접 살펴보면서 이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살펴보자. 1. 사도행전 2:4-7절보혜사 성령이 임하셨던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서 주의 제자들은 본토 유대인들에게는 아람어로, 천하각국으로부터
언제나 무지하게 거짓 방언을 옹호하는 평택대학교의 신학과 교수 김동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부채도사 유형의 영성을 드러내는 온누리교회의 김하중 장로 등에게서 나타나는 일들이 사도행전 성령의 역사라고 극찬하는 등의 내용을 보고서 어떤 사람들은 그를 '박사급 박수무당'이라고 한다. 김동수 목사는 아무 의미가 없는 사이비 소리현상이 기독교의 신령한 영의 언어이고, 그것이야 말로 원래의 기독교의 방언이라고 우기는 항상 안타까운 행동을 계속 일삼는다. 최근 김동수는 이창모 목사의 저서 (밴드오부퓨리탄, 2014)에 대해서도 훼방하는 어리석은 글을 써서 또 많은 신실한 신자들의 눈살을 찌뿌리게 만들었다. 이에 이창모 목사는 아무런 바른 지식이 없으면서도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