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섬기는 카페에서 한회원이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올렸다.“먼저 얼굴과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올바른 신앙을 위해 노력하시는 카페 운영진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런 카페를 알게해 주신 주님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흠 ... 조심스레 질문이 있는데요. 거두절미 하고,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그와 똑 같은 말씀의 능력으로 한마디만 하시면 ... 즉, 사탄은 사라지고 인간들은 다시 나의 새로운 생기를 받아라! 라고 말씀 한마디만 하시면 되는데 ... 왜? 굳이 예수님의 피를 흘리게 하셨고, 말씀 한 마디로 사탄을 없애시지 않은 신걸까요? 정말 궁금합니다."이 질문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답을 달았다.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사랑과 공의 로
성경에서 강조하는 말씀은 중요하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자주 실패하고 너무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 용기를 주시는 말씀도 있는 것 같다. 두려워말라! 우리는 자주 두려워한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안간 관계를 두려워하고 권력을 두려워하고 조직을 두려워하고 상사를 두려워하고 목회자는 교인수가 줄까봐 두려워하여 장로들과 교인들의 눈치를 보고 심지어 성도는 교회공동체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될까보아 목회자를 그리고 다수교인들의 힘을 두려워한다.그래서 진리가 아님을 알면서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합리화한다. 불의에 대항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옳은 말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것은 다 자기에게 손해가 되고 불이익을 당할까봐 염려해서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진정 의뢰한다면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다
요즘 한국의 교회들 가운데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교인들의 신앙을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그러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양적부흥을 이룬 교회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엄밀하게 따져보면 꼭 그러한 프로그램 때문에 양적으로 성장한 것이 아닐 수 도 있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을 도입한 몇몇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했다는 소문이 돌면 그 프로그램은 유행처럼 많은 교회를 점령하게 된다. 예를 든다면 두 날개 프로그램이나 알파코스, 등이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이와 비슷한 일이 개인의 신앙생활에서도 적용되는 것을 실제로 많이 보았다. 누가 DTS훈련이나 특정훈련을 받고나니 자기 개인의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그 말을 들은 주위사람들도 그 훈련을 받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는 말
예정론을 믿으면서 왜 전도를 하냐구요? 예정론은 돌아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속에 있었음을 고백하는 신앙이론이다. 구원도 내가 믿어서 받은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나를 선택해서 구원의 은혜를 주셔서 믿어지게 되었구나! 하고 깨달으면 예정론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만일 회개하고 기도해서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여지셨다면, 이 또한 예정속의 섭리다.우리 인간의 편에서는 하나님의 결정이 무엇일까? 궁금해 할 필요없이 기도하고 삶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운명이 정해져 있으니 체념하거나 운명에 맡기고 되는대로 살아가자는 것이 숙명론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최선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살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두말할 가치도 없는 진리이다. 그런데 구원 그 이후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심비에 새져진 성령의 법에 따라 살아가고 있으니, 이제 구약의 도덕법은 거기에 녹아져 있으니 볼 필요도 없다는 주장과 그 성령의 법을 따름에 지침서인 계명의 기초인 구약의 도덕법을 보면서 신구약 모든 말씀에 순종할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양분되고 있다.개혁주의 신학은 율법과 복음을 대립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속에서 복음을, 복음 속에서 율법을 발견할 수 있고, 발견해야 한다는 '언약' 신학적 관점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율법 그 자체로서는 '죽이는 것'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 율법이 성령으로 인하여 사용될 때에 그것이 복음의
짬뽕 먹을까? 짜장면 먹을까? 오늘 저녁 반찬은 무엇을 할까? ... 이렇게 하나님께 여쭙는게 신앙이 좋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이 의외로 많다. 이것은 이기적 사고와 이원론적 사고를 가진 분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자기는 절대로 손해보거나 실패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살면서 복만 누리겠다는 심리이다. 이는 매사가 성령 아니면 마귀의 역사라 생각하는 잘못된 신앙관이다. 심하게 말하면 하나님을 자신의 심복처럼 생각하는 잘못된 가치관이다.우리에겐 중립적 가치가 있다. 인생사에는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뜻이고
구약의 제사를 통하여서도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이 우리를 구원하심을 알수 있다. 구약은 짐승의 죽음으로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며 속죄의 제사를 드렸다. 만일 김성로 목사가 주장한것처럼 부활을 따로 믿어야 구원이 된다면 짐승의 대속의 죽음으로 속죄제사를 드린 구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것일지 의문이다,구약 성도도 오직 예수를 믿은 자만이 구원 받았다. 물론 구약백성은 역사적 실존 인물 예수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완성될 하나님의 구원의 원리를 믿고 인정한 자들이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에게 예수님 당시나 신약시대의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육신을 가지고 직접 이 땅에 오신 예수 그
오해가 많은 이 주제를 더 논하기 전에 잠시 멈취서 용어의 정의를 내려보자. ‘예지’란 무슨 뜻인가? ‘미리 안다’는 것이라고 누구나 쉽게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되겠다. 그렇다고 웹스터 사전을 뒤적이면서 최종 판단을 내려서도 안 되겠다.왜냐하면 이것은 용어에 관한 어원학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그 단어가 성경에 어떻게 쓰여졌나를 알아내는 일이다. 성령의 언어 구사는 항상 그 단어의 의미와 범위를 설정해 준다. 많은 혼동과 오해를 일으키는 이 단순한 규칙을 적용함은 잘못이다.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성경에 기록된 어떤 단어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다고 상상한 나머지 성구사전을 통하여 자신들의 상상을 시험해보려고 들지 않는다. 이점을 좀 더 확
"분할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에이든토저)언제 연합하며, 언제 분할할 것인가? 이 질문에 올바르게 답변하려면 솔로문의지혜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어림짐작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여 ‘연합은 모두 선한 것이며 분열은 모두 나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아주 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이처럼 전혀 노력함이 없이 그 문제를 다루는 것은 역사가 제공하는 교훈들을 무시하는 것이며, 인간이 살아갈 표준이 되는 심오한 영적 규례들을 간과하는 것이다.만일 선한 서람들은 모두 연합에 찬성하며 악한 사람들은 모두 분열에 찬성한다면, 또는 그 반대가 된다면, 모든 일을 판정하기가 쉬울 것이다. 또는 만일 하나님께서는 연합하시며 마귀는 항상 분열한다면, 이 혼란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길을 발견하기가 쉬울
(각종의 신비주의와 비성경적인 주장들과 이론들이 난무한 시대에 매우 유익한 글이가 생각되어, B. B 워필드의 글 "기적과 계시"를 소개합니다.)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년)가 이 사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각 개인들의 개별적인 필요를 충당시켜 주기 위해 신 지식(神知識) 창고를 개인에게 따로 전달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다. 그분은 오히려 모두를 위한 공동의 식탁 하나를 펼쳐 놓으신 뒤 모든 사람에게 와서 풍성한 대축제에 참여하라고 초청하신다.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고 모든 사람에게 넉넉하고, 모든 사람을 위해 준비된 하나의 완성된 계시를 세상에 주셨으며, 각 사람으로 하여금 이 하나의 완성된 계시로부터 각자의 모든 영적 양식을 가져가도록 요구하
구원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 구원을 사변적으로 지나치게 풀어서 구원파라는 이단이 탄생했다. 재림은 우리의 소망이다. 하지만 그것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여서 재림교라는 이단이 나왔다. 영생 또한 거듭난 자에게 주어진 복이다. 그러나 영생교라는 이단 때문에 오히려 영생이라는 말을 잘 안 쓰게 된다.성화는 기독교인들이 반드시 이루어 가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화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성화구원론자들이 있다. 성화로 구원을 얻는다는, 즉 행위구원론자들로 인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기독교의 진리가 왜곡되고 있다.기독교에는 신비가 있다. 하지만 매사를 신비롭게만 보려하므로 신비주의가 나왔다. 신비주의는 말씀보다는 이적과 기사만 좇는 것이다. 작년인가 개성공단교회 위에 떨어진 낙뢰를 불
예전에는 교회 옮기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므로 벌 받을까 봐 겁이 나서 못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들이 많이 없어지고 쓸데없는 죄책감들은 들지 않는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쉽게 옮기지 못하는 이유들이 있다. 신학적으로 잘못된 설교, 세습, 목회자의 성(性) 문제, 돈 문제 등으로 분명히 문제가 심각한 상황임에도 교회를 쉽게 옮기지 못하는 이유들을 한번 생각해 본다.1. 그동안 자기 교회에서 쌓아 두었던 기득권을 다 포기해야 된다.오랜 교회생활로 인한 인간관계, 편함 익숙함 등등이다. 실제로 나이 많으신 분들 가운데는 자녀들 결혼시킬 즈음에 그동안 교인들 경조사비를 실컷 내고 못 받을까 봐 못 옮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2. 교회를 옮긴 사람들을 색안경 끼고 본다.
신사도 단체에 속한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불신자를 전도하는 일 보다는 기존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 열심을 내고 더 뜨거운 것을 원하는 사람들을 그곳으로 데려가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 단체에 속하면 신앙생활을 아주 잘하게 된다고 유혹한다. 물론 본인들은 유혹이 아니라 좋은 단체를 소개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분들이 교회 안에서는 별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기에 요주의 인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그 분들이 인간적으로 착한 경우가 많다. 신천지나 안상홍 ... 등의 그룹은 차라리 위험하지 않다. 성경의 기본만 알고, 상식만 있어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색깔이 분명하여 분별하기도 쉽다. 그런데 신사도나 신사도 유사단체들은 진리와 비 진리를 교
10여년 전 교주가 되어가는 담임목사를 더 이상 용납할수 없어 교회를 옮겼다. 새 교회에서는 교회 봉사도 쉬고 예배만 참석하다 나름 신실한 교인들과 함께 이 지역에서 처음 열린다는 기도학교라는 곳에 가게 되었다. 주위의 권유가 많았고, 특히 합동, 고신 교단의 목사들도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니 열린마음으로 참여하라는 권유로 애니선교회의 기도학교를 등록하고 12주 과정을 다니게 되었다.근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필독서가 캐니스해긴과 릭조이너의 책이였는데, 당시 난 그들이 누군지도 몰랐지만 책이 읽어지지도 않고, 대충 보니 입신 등 이상한 내용의 책이라서 그만두려고 했다. 그러나 이왕 돈도 내고 했으니 같이 하자는 권유에 호기심 반으로 다녔다. 신비주의에 자의적 성경해석에 건전하지 못한 신학 노선이라는 생각이